올 여름 사랑이 찾아왔다. 한동안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비가 몹시 그리울 때쯤, 하늘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오르게 하는 시원한 빗줄기를 뿌렸다. 이후 신비로운 쌍무지개를 선사했고, 바람으로 변화무쌍한 구름 에어쇼를 펼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 온통 발갛게 물든 해질녘 빛깔에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얼른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하늘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처럼 웅장하고 찬란하게 구름과 노을이 어우러진 장관에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며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이후 필자는 여름 하늘을 진심 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늘이 보고 싶어 옥상으로 올라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맛있게 식사를 할 때 오감으로 느끼는 충만한 기쁨에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한편, 세대를 뛰어넘은 사랑을 다룬 영화 <빛나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아름답고도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제주도가 배경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싶었다는 배우 고두심이 해녀를, 33세 연하남 다큐멘터리 PD역은 지현우가 연기했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위로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튼다는데...
사랑은 나이도 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이른바 ‘묻지마 사랑’이다. 특히, 무한한 고향 사랑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을 것이다. 정지용의 ‘향수’처럼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동무들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고향이 시골이라면 더욱 그럴 것 같다.
코로나19로 고향에 가지 못한 채 올해도 지나려나 보다. 집단면역으로 극복하기를 고대했건만 변이 바이러스가 말썽이다. 그러면서 백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거슬러 올라가 백신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최초로 등장한 팬데믹은 ‘천연두’라고 한다. ‘두창, 마마’라고도 불리던 천연두는 치사율이 매우 높을뿐더러 살아남더라고 살갗이 움푹 패이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겨 오랫동안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려 기원전 1만 년 경부터 존재했고, 고대 이집트 미라에도 파라오의 얼굴에 얽은 자국이 있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지석영과 정약용이 천연두 치료에 힘썼던 인물들이다.
‘백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비교적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우두(소의 천연두)에 관한 소문을 동네에서 듣고 연구를 시작해 세계 최초로 천연두 백신을 개발했다. 라틴어로 ‘암소’라는 뜻의 ‘백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1796년 천연두 백신 예방 효과를 입증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각종 오해와 불신을 이기고 마침내 인정받아 유명해졌지만, 에드워드 제너는 대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평생 동안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며 살았다. 시골과 시골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그의 행복이었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 사랑의 고향은 어디일까? 포근한 어머니의 뱃속 같기도 하고, 신기한 마법사의 공간 같기도 한 하늘을 날마다 올려다본다. 새롭게 다가올 푸른 빛깔의 가을 하늘과 사랑할 날들을 기대하며.

저작권자 © 동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