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동안 폭풍 같은 날들이 지나갔다. 필자의 집은 언덕 위에 있으니까 그야말로 폭풍의 언덕인 셈이었다. 빌라의 8세대 중 한 세대가 이곳에 오래 살면서 쌓인 개인적인 감정을 이유로 지난 1년 반 동안 의무사항을 하지 않아 골치를 앓고 있었다. 빌라총회와 관리위원회를 무시하니 어떤 방법을 써도 해결되지 않았다.
급기야 며칠 전 긴급총회를 열고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핵심 관리위원 3명 공동사퇴, 관리비 해체, 공동전기 차단, 그리고 세대별 공개 항의글 작성. 이후 빌라 계단은 밤마다 어둠에 쌓였고 치열한 게시글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3일 만에 그 세대는 손을 들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고, 드디어 빌라에 밝고 평온한 일상이 돌아왔다.
빌라운영의 모든 것을 상의해온 이웃과 뒤풀이를 했다. 그동안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좋은 이웃들과 더욱 끈끈한 유대관계가 맺어지고,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다보니 문제해결능력이 키워졌으며, 세대별 특징을 잘 알게 되어 적절한 균형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의 마음이 환한 보름달 같이 차올랐다.
한편, 필자가 아는 한 사람은 단골 식당의 단골 메뉴를 애용하는 스타일이다. 음식점 주인은 그를 위하는 마음에 자꾸 밥이나 찌개를 더 많이 주었다고 한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그는 어느 날, 반찬을 더 챙겨주는 주인에게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이유를 모르는 주인은 서운한 마음에 이후로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한다. “위해주려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많이 먹지 못하니 음식을 더 챙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소 불편한 그 한 마디를 못해서 주인의 소중한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안타깝다.
보통 ‘뒷담화’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로 느껴진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뒷담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상대방을 험담하기보다 내 감정의 홍수를 막기 위해서 말이다. 오해와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사회적인 문제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하물며 ‘아름다운 뒷담화’야 두말할 나위 있으랴.
윗글의 지인처럼 불편한 마음을 차마 표현하지 못하면 엉뚱하게 일이 터진다. 비록 상대방이 불편해 할 말이라도 솔직하게 표현해야 감정의 홍수와 마음의 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방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를 판단해서 단계적으로 말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용기와 지혜를 좌우에 갖춘 사람의 ‘불편한 앞담화’는 막힌 담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 하나가 담 전체를 허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벌거벗은 세계사’가 있다. 그동안 위인이나 영웅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이면적인 모습까지 자세하게 다뤄주니 생각그릇이 넓어지는 것 같다. 나폴레옹의 열등감과 과도한 과시욕이 부른 전쟁, 콜럼버스의 금 채굴 욕심과 원주민들 학대, 삼국지 주인공들의 역사적인 진실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스스로에 대한 아름다운 뒷담화와 불편한 앞담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자랑스럽고도 부끄러운 나를 사랑하련다. 그런 타인들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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