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도 나무도 알록달록 물들어가고 있는 이 가을에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의 치매 증상이 좀 더 심해지셔서 우주복을 입혀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우주복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자문을 구해 두 벌을 주문했다.
어르신용 우주복은 일명 치매복이다. 제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치매 어르신들 옷이다 보니, 스스로 열 수 없도록 지퍼에 열쇠가 달린 제품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하미 제품은 인권을 고려해 지퍼에 열쇠 대신 특수잠금기능을 더하고 100% 면으로 내구성이 강해서 마음이 놓였다.
친정 팔남매 가족들 단톡에 이 소식을 알렸다. 가족들도 아마 나처럼 철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복이라고 하니 실제 우주복이 연상되어 일상생활에 뭔가 제약이 많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핑크와 민트색의 귀여운 잠옷 같은 디자인을 보고는 ‘생각보다 괜찮겠네!’ 하는 반응을 보여 웃음이 났다.
아기용 우주복은 상하의를 하나로 연결해서 만들고 지퍼를 길게 달아 갈아입히거나 기저귀를 갈기 편하게 만든 옷이다. 예쁜 우주복 입은 신생아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엄마의 얼굴을 겹쳐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딸아이가 어렸을 때 우주복을 입혀 돌 사진을 찍으러 갔었는데, 남아인 줄 알고 경찰관 사진을 찍어서 깜짝 놀라 여자아이라고 말했던 기억도 소환되어 잠시 행복한 시간여행을 하기도 했다.
실제 우주복은 ‘사람 모양의 작은 우주선’ 또는 ‘1인용 지구’라고 불릴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해서 입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주인이 진공상태의 우주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내부압력과 온도를 조절하고 산소를 공급하며 이산화탄소를 없앤다. 우주 유영이나 월면 보행을 돕고 통신 시스템을 갖추며, 우주 방사능과 우주 먼지(쓰레기), 태양열에서 보호하려니 얼마나 그 기능이 뛰어나야 할까?
우주복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우주선 발사 및 재진입시에 입는 ‘여압복’, 우주선 안에서 입는 ‘생활복’, 우주에서 활동할 때 입는 ‘선외 활동복(월면복)’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주복은 특수기능이 장착되어 매우 무거운 ‘월면복’을 일컫는데, 어르신용 우주복은 비교적 단순한 모양의 ‘생활복’을 닮았으니 오해할 만도 하다.
한편, 지난 9월 16일 스페이스X 우주선이 최초로 우주 비행사 없이 민간인 4명을 태우고 3일 동안 지구궤도 여행을 하고 온 것에 대해 민간인 우주여행의 시대가 열렸다고 떠들썩했지만, 이는 갑부들의 이야기이고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주관광을 위해서는 우주 쓰레기나 많은 양의 탄소 배출, 우주 방사능 위험 등의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광활한 우주로 간다는 것은 3차원의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차원을 탐험하고 정복하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은데,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바로 1위를 차지한 한국형 SF영화이자 우주 청소부의 사투를 다룬 영화 <승리호>를 찾아보고 싶다.
우주복을 입어야만 갈 수 있는 우주여행은 한계가 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을 날마다 맛보는 마음여행의 황홀함에는 한계가 없다. 무르익는 가을을 즐기며, 익어가는 인생을 사랑하자.
자유와 책임이라는 양 날개를 활짝 펴고 공동체를 살려내는 ‘위드 코로나’의 첫발을 힘차게 내딛는 11월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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