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前동작구청장, 국가원로회의 위원)

강연을 마치고 컴퓨터를 정리하는데, 한 어머님이 오셔서 “5분 정도만 시간을 내 주실 수 있겠느냐?”고 요청을 했습니다. 표정을 보니까 다급하신 것 같아서 “예, 그렇게 하지요.” 하고 정리를 끝낸 다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중학교 1학년 딸을 두었습니다. 6학년 때도 아이들의 괴롭힘 때문에 힘이 들어서 학교를 옮기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답니다. 그 학교가 남녀공학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진회라는 단체에 속한 남학생 2명이 자기를 계속 괴롭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에게 “전학을 가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오고 가는 길이 지나치게 멀기 때문에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교복의 한 부분이 얼룩으로 표시가 날 정도로 크게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전학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고려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제 문제처럼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지요. “학교에 가서 전후 사정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문제 해결을 요구한 적이 있느냐?” 하니까, 그분은 “선생님들이 별 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참으면 되지.’ 정도로 마칩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면 충분히 대화를 나눈 다음에 아이의 학교를 옮겨 주기 바랍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선생님들이 그 문제를 별로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생각을 해 보시지요. 저는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자기의 권리가 무엇인지? 타인의 권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권리를 구분하고 그와 같은 부분들을 침해했을 때 어떤 종류의 처벌이나, 책임을 물어야 할지?’에 대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물음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선생님들 이라면 남학생들을 불러서 훈계를 하고, 1~2회 반복이 되면 주의를 주고, 그래도 안 되면, 학교를 떠나야 할 사람들은 너희들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이 학교나 사회가 아니라는 점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근래의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부분에 목소리를 높입니다.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
물론 다 가능한 것이지요. 원래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런 소란스러움과 갈등 때문에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런 소란스러움과 갈등은 지켜야 할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자유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의 많은 시위를 보더라도 우리가 학교를 통해서 어떤 교육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시위와 같은 부분에서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 본인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상태에서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와 타인의 권리에 대한 부분을 명확히 구분 짓고, 또 그와 같은 것들을 사회적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타인의 권리를 자신의 권리만큼 존중하고, 타인의 신체에 대해서 물리적으로나, 말로써 위해를 가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라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와 같은 부분이 우리 사회가, 또 우리 개인이 행복과 번영으로 가는 초석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권리를 좀 더 중요시하고, 그와 같은 부분들을 보호하는 것에 신경 쓸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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