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에서 온 딸들의 친정 엄마, 위기이주여성 아픔과 설움 보듬다

 
가을 바람이 제법 쌀쌀했던 아침, 성대골 골목카페(성대로21길 14)를 찾았다.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승혜유치원, 상도유치원, 믿음어린이집 등이 위치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을을 가득 채운다.
지난 9월 문을 연 성대골 골목카페의 커피값은 1,000원, 믹스커피는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이웃들에게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서너 잔 값을 내도 뭐라 나무랄 사람은 없다. 이 정겨운 곳에서 (사)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의 권오희 대표를 만났다. 권 대표는 성대골 골목카페의 주인장이기도 하다.
(사)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다문화가족이 한국 사회에 신속하게 정착하고 구성원의 능력을 원활하게 활용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지역사회 내에 바람직하게 적응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연대의 역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현장에서 활동했던 권오희 대표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외국인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보듬게 되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자’는 목적으로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치열한 연구와 거듭된 실천을 거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과정의 체계를 잡아나간 것이 이 시기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여성가족부와 아모레 퍼시픽 그룹의 도움을 받아 2년 간 한국어 방문지도, 출산 및 산후조리 지원, 아이 돌보기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권 대표는 활동가 시절 맺어진 김혜련 서울시의원과의 인연으로 최근 동작구에 터를 잡게 되었다.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해 노동자, 유학생, 관광객, 미등록 여성 등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도움을 요청할 곳이 마땅치 않다. (사)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에서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으로 고통 받는 외국인여성들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긴급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인연이 닿은 여성들은 안전한 쉼터에 머물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의료 및 법률서비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위기 극복을 돕기 위해 부부상담, 가족상담 등을 지원하며 동반자녀가 있을 경우 돌봐주기도 한다. 먼 나라로 시집 와 말 못할 어려움과 서러움을 겪었을 여인들이 지친 얼굴로 쉼터에 찾아들었고, 웃는 얼굴로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위기이주여성에 대한 보살핌은 한 개인의 인권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아우른다는 면에서 중요해요. 이주여성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남편도 상담을 받아야 해요. 남편의 부모님과 형제들도 마찬가지예요. 성격, 언어, 풍습 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외국인 여성을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많은 풍파를 거친 끝에 홀로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게 된 한부모이주여성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나쁘다. 직업도 기술도 경제력도 없고 어디를 봐도 의지할 사람 하나 없다.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이 땅에서 키우기로 결심한 그녀들에게 현실은 매우 가혹하다. 권오희 대표는 기꺼이 그들의 친정 엄마가 되어준다. 아이를 돌봐주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직업을 찾아주며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당사자만큼이나 치열하고 필사적이다.
2000년대 들어 국제결혼이 급증했고, 미래에 대한 대비 없이 국제결혼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2004년 무렵에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불거졌다. 합법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무수한 미등록 노동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문화적 차이,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많은 다문화․외국인 가정이 고통을 겪었고, 그 무렵 태어난 아이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힘겹게 성장했다. 국가와 사회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고 대비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 모두의 큰 숙제로 남아있다. (사)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와 권오희 대표는 매 순간 그 어려운 숙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대상으로 규정하려고 애를 써요. 코시안(코리아와 아시안의 합성어)이라는 괴상한 단어도 만들어서 공공연하게 사용했죠. 그 단어에 담긴 폭력성을 지적하자 또 다른 명칭을 공모하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글로벌’이라는 개념은 서구까지 포함하지만 ‘다문화’라는 말은 어떤가요. ‘다문화’라는 말 속에 일종의 차별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구별을 담아두지 않았나 돌아보았으면 해요.”
맑은 음성 속에서 강인한 신념이 전해져왔다. 권오희 대표는 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에 돕는 것이라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배려를 받기만 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고 더불어 성장하는 친구들이라는 뜻이다.
권오희 대표는 연대 활동과 쉼터 운영 등으로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운영난에 시달리고, 인력이 부족해 24시간 혼자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큰 즐거움과 책임감이 사소한 고단함을 상쇄한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정체성을 위해서 외국인 엄마들은 일상생활에서 모국어를 꼭 써야만 해요. 미래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이가 온전하게 소통하고 교감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예요.”
외국인 엄마를 둔 아이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이들과 함께 엄마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권오희 대표의 소박한 꿈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주여성들의 아픔을 친정 엄마의 마음으로 보듬는 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한 걸음이다. 권오희 대표와의 만남은 '개인의 문제 또는 연대의 문제가 아닌,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성대골 골목카페는 서울시마을공동체지원사업에 공모를 거쳐 선정된 사업이다. 가파른 언덕을 숨차게 올라온 마을 어르신들에게 쉬어갈 의자와 시원한 물 한잔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 출발이었다. 인근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느라 골목길을 서성거리던 엄마들은 골목카페 덕분에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육아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마침 산책을 나온 이웃집 할머니에게 권오희 대표가 따뜻한 차를 권했다. 화사한 햇살이 내리쬐는 골목길 벤치에 나란히 앉아 호박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눈다. 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 골목에는 봄꽃이 피어날 것 같다. 고운 사람들이 꽃처럼 웃고 있었다.

- (사)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 : 전화 ☎ 070-8829-1366
- 후원계좌 : 1005-902-265868 (우리은행, 예금주 (사)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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