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 영 석(동작문인협회 회장)
 
가까운 이웃 중에 꼭 40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며느리가 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과 결혼해서 딸만 내리 넷을 낳았으니 시어머니의 구박은 얼마나 심했을 거며, 마음고생은 또 어떨까 싶어 옆에서 지레 눈치를 보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격의 없는 여자들끼리 모이면 으레 빠지지 않는 단골화제인 시어머니 험담에 한 번도 끼어 든 적이 없다. 이런 자리에서 가끔은 속마음을 털어 놓아야 화병이 돋지 않는다고 진반 농반으로 아무리 부추겨도 그는 항상 고개를 저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무리 미워하고 싶어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어. 그 분을 미워한다면 내가 벌을 받을 것 같아.”
시어머니 때문에 숨이 답답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좁은 집에 어른과 늘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거지 시어머니의 성격이나 행동은 흠잡을 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며느리인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는 커녕 아주 조그만 일에도 늘 고맙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는 거라고 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네가 옆에서 이렇게 함께 있으니 정말 고맙다며 손을 잡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앉아 있던 자신이 머쓱하고 죄송할 지경이란다. 그 긴 세월동안 식사 때마다 번번이 별 것 아닌 반찬에도 고마워하고 너는 참으로 음식 솜씨가 좋구나 라며 마냥 칭찬이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말들이 혀끝에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며느리로서는 항상 과분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든단다.
대접하는 며느리로 하여금 대접받는 기분을 갖게 만드는 이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속으로 다짐하게 된다. 그래, 나도 지금부터 젊은 애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말고 살아야지.
그런데 돈 한 푼 안 드는, 이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정작 현실에선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젊은 애들한테 바라는 것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인가 보다. 게다가 요즘 젊은 애들 하는 짓을 보면 우리 때하고는 엄청 달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하기만 하다. 행동이나 말이나 고마운 마음이 들기는커녕 섭섭한 마음만 잔뜩 쌓이게 만든다. ‘억지로라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영 기회를 안 주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요즘 젊은 놈들이란, 쯧쯧.’
그래서 그런지 주위를 둘러보면 자식 때문에 섭섭해 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자식은 소용없다, 돈이 효자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이다. 하지만 자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살아생전 자식을 안보고 살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자꾸 수명이 길어져만 가는 세상에선 부모 자식 간의 친밀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 더욱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이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젊은이가 예전의 젊은이가 아닌 것처럼 노인도 예전의 노인이 아니다. 젊어서 할 만큼 했으니 나이 들어선 자식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며 손 놓고 기다리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부모 자식 간의 친밀감을 계속 쌓아가기 위해선 일방적인 효를 요구할 게 아니라  부모 쪽에서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식에 대한 섭섭함 따위는 가볍게 날려 버리고 자식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버이날 아무 연락이 없다고 섭섭해 하기 전에, “네가 잘 살아 주어 고맙고 행복하다.”고 먼저 전화를 걸 수 있어야 한다. 정말이지, 이 험한 세상에 전화 걸 자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또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힘을 주는 부모를 둔 자식은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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