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상도2동, 드림인공존 대표)

상도2동으로 이사 온 지 이년 째다. 서울생활을 시작했던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서대문구에서 살아왔고 2013년 연말에 동작구로 이사 오게 되었다. 평소 걷기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해 찾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곳이 바로 밤골마을이다.

밤골마을은 동작구 상도2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에 몇 개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하나이다. 지난 30여 년간을 재개발과 재건축을 오가며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예전의 모습들을 여전히 간직되고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과 오래된 우물이 있고, 쓰러질 듯 힘겹게 서로를 버티고 있는 따닥따닥 붙어있는 집들의 모습이 전형적인 달동네이다. 집을 나서 300m만 걸어가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내 어릴적 추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공간이 되었다.

밤골마을 전경
서울의 달동네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급속해지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서울로 급격한 이동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값싼 주거지를 찾기 위해 빈곤계층들이 산비탈 등에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탓에 달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단순노무, 행상, 노점 등의 저소득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농촌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로 인해 시골마을과 같은 정서적 공감대가 이어져 가는 소박한 인정이 유지되어 왔다. 1990년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서울의 달’은 이런 달동네를 잘 묘사하며 국민들에게 사랑받던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밤골은 섬과 같다. 멀리 남산과 서울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아파트 숲에 배짱좋게 버티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달동네라는 이름에서 보듯 밤골마을 역시도 수많은 애환과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맨 처음 마을을 들어설 땐, “여기 서울 맞아?”라는 의문이 생길정도로 70~80년대의 풍경으로 순간이동이 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태우고 난 연탄들의 풍경도 볼 수 있고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 앞에서는 처음 걷는 사람은 미로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느 골목에선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올 때도 있고, 가던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제자리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런 길도 있다. 

1978년 돌에 새겨진 밤골고갯길과 2015년에 그려진 밤골고갯길 벽화

하지만 골목길을 걷다보면 이런 재미보다 더 값진 볼거리가 있다. 좁은 골목길 틈틈이 담장 밖으로 자란 꽃과 나무들의 변화는 삭막한 아파트의 계절감보다는 솔직하다. 좁은 자투리 공간이라도 있다면 어김없이 싱싱한 채소들이 이 마을의 집들처럼 오밀조밀 잘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어느 집을 지날 땐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눈인사도 있고, 밤골상회의 성격 좋은 고양이 밤순이는 처음 보는 낯선 이의 발길에 다가와 비벼대기도 한다. 밤골상회는 상도1동에서 밤골마을로 올라가는 밤골고개 위에 바로 위치하고 있는 명실공히 랜드마크와 같은 곳이다.

밤골고갯길 위에 위치하고 있는 밤골상회, 밤골상회에 평상은 누구나 앉아서 쉬어갈 수 있다.

얼마전부터 친해진 수민이 할머니는 “저기가 쥔은 몇 번이나 바꿨는데도 간판이 한 번도 안 바꿨잖아!”, “저게 거의 40년 된 간편여”라며 꽤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다. 마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세월을 담은 밤골상회의 간판도, 밤나무가 많아 이름이 밤골인 마을에 살고 있는  밤순이도 모두 나에겐 정겹기만 한 이야기들이 담긴 곳이다. 물론 지난 3월부터 친해진 수민이 할머니도 빠질 수 없는 밤골의 진정한 홍보대사이시다. 아마도 밤골을 찾는 외지사람들에겐 가장 친숙하신 분이 아닐까!

짝사랑하는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이 담긴 벽화가 풋풋하다.
수민이 할머니로 인해 밤골은 나에게 더욱 친숙한 곳이 되었다. 지난 3월부터 드림인공존에서는 봉사자들과 함께 기회가 될 때마다 벽화를 그리고 있다. 처음 밤골고개에서 벽화를 그리던 중 한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기다 좀 그려줘 봐”라며 벽화를 부탁하셨다. 그리고 두 번째 벽화작업을 진행하러 갔을 때가 마침, 할머니집에 놀러온 손녀딸 수민이가 떠나던 참이였다. 손녀딸을 무척 예뻐하시는 모습과 떠난 손녀딸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모습에 손녀딸 수민이를 그려드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수민이 할머니가 되었다. 수민이는 할머니의 손녀이지만 나에겐 밤골에서의 작은 추억이자 정겨운 밤골마을의 모습이기도 하다. 

밤골마을은 어쩌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던 골목은 넓은 평지로 깎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높고 답답한 아파트의 나무들 속엔 오랜 세월에 닳고 떨어져나간 담벼락도 없을 테고 더 이상 밤골에서 벽화를 그리는 일도 없을 것이며, 정겹던 밤골상회는 어쩌면 넓고 환한 조명으로 가득한 밤골마트가 될 수도 있다. 밤골마트에서는 밤순이도 낯선 누군가를 따라나설 수도 없을 것이다.
밤골마을은 어쩌면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될 수도 있다. 그 마지막 달동네가 사라지고 나면 이렇게 밤골마을을 걸으며 찾았던 마음의 위안도 추억속의 한 장면도 이젠 좁디좁은 박물관이나 책속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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