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국가원로회의 위원)

 “0%대 저물가? 도대체 어느 나라 통계입니까!”
지난 10월 2일 ‘소비자물가 10개월째 0%대 … 전셋값만 나 홀로 급등’이라는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인터넷에 단 댓글들이다.
실제 이날 통계청이 내놓은 ‘9월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6% 상승하는 데 그쳤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 0.8%를 기록하며 ‘1%’ 아래로 떨어진 이후 9월까지 0.4~0.8% 사이를 오갔다. ‘0%대 저물가’ 행진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저물가 상황 속에서도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오히려 높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소위 통계물가와 ‘장바구니물가’의 차이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품목은 481개다. 목돈을 지출해야 하는 전·월세를 비롯해 매달 내는 도시가스, 수시로 구입하는 쇠고기·돼지고기, 10년에 한번 살까 말까 한 자동차, TV, 냉장고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481개 품목은 2010년 기준으로 결정됐다. 또 소비자물가에는 ‘가중치’라는 개념이 있다. 가중치는 각 가정의 가계부, 즉 매달 어느 항목에 얼마를 지출하는지 살펴보는 ‘가계동향조사’를 토대로 산출한다. 많이 지출하는 품목에는 그만큼 가중치를 줘 물가변동 시 더 많은 영향을 미치도록 한 것이다.
481개 품목의 가중치 합은 총 1000이다. 부문별로는 주택·수도·전기 및 연료가 173으로 가장 많고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139), 음식·숙박(121.6), 교통(111.4)순이다. 이 가중치는 당초 ‘0’과 ‘5’가 들어가는 해마다 변경했지만 생활패턴이 빠르게 변하면서 5년 사이 한 차례 더 변경하고 있다. 현재 가중치는 2012년 것으로 올해를 기준으로 내년에 추가로 바꿀 예정이다.
그렇다면 통계와 실제 느끼는 물가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바로 물가통계 품목과 가중치 그리고 주관적 느낌 때문이다. 통계청의 9월 조사에 따르면 1년 전과 비교해 담배는 국산이 83.7%, 수입은 67.9%나 급등했다. 또 양파는 84.7%, 마늘은 30.2%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철료(15.2%)와 학교급식비(10.2%)도 상승했다. 전세는 3.9% 뛰었다.
국산 담배(4.8), 수입 담배(2.9), 양파(0.8), 마늘(1.4), 전철료(3.5), 학교급식비(5.4), 전세(62) 등의 품목이 가중치 1000 중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내가 피우는 국산 담배의 값이 2배 가까이 올랐는데 물가통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000 중 4.8가량인 것이다.
또 통상 가구당 한 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물가통계에는 경(1.4)· 소형(2.7)· 중형(4)·대형(5.2) 승용차를 비롯해 다목적승용차(1.4), 수입 승용차(3.3) 가격이 모두 영향을 주고 가중치도 다 다르다. 내가 타고 있는 소형차 가격이 올랐는데 수입 승용차 값이 개별소비세 등의 영향으로 더 많이 하락했다면 물가는 내려가는 식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비자는) 본인이 자주 사는 상품 가격 흐름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게다가) 가격이 오르는 것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값이) 하락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이 급등한 담배나 양파, 급식비, 전세 등에 대해선 예민하지만 1년 전과 비교해 가격이 하락한 휘발유(-16.6%), 도시가스(-17%), 국제항공료(-12%), 배추(-16.4%), 풋고추(-30.4%) 등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물가를 상당히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다.
체감물가는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개인의 의견이기 때문에 대표성이 없다. 체감물가를 고스란히 (통계에 과도하게) 반영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로 널뛰는 등 경제지표, 물가에 연동되는 각종 예산지출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소비자물가) 구성품목 선택에서 현실적 감각이 떨어진다, 아니다를 갖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가통계를 놓고 소비자가 현실과 괴리를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품목별 가중치 변화가 자신의 소비지출 패턴 변화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일례로 전·월세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데 2000년 당시 가중치가 93.5, 37.9였던 전세, 월세는 현재 62, 30.8로 가중치가 오히려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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