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국가원로회의 위원)

치유와 재생의 공간이 돼야 할 가정이 온갖 강력범죄로 얼룩지고 있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의 4분의 1 이상이 가족관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사회의 가장 기초적 단위인 가족관계가 범죄로 얼룩지면서,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리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경찰서 에서 살인죄로 입건된 447명 중 29.8%에 달하는 133명이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살인죄 입건자 377명 중 28.4%(107명)가 가족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것에 비해 1.4% 높아진 수치다.
살인을 계획했지만 미수에 그치는 등 실제로 살인까지 가지 못한 경우는 575명으로, 이들 중 17.9%에 달하는 103명이 역시 가족을 살해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해 살인미수 등 혐의 입건자 620명 중 16.9% 수준인 105명이 가족을 살해하려 한 것에 비해 1% 높아진 모습이다.
살인죄로 입건된 이들 중 가정불화를 이유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들은 총 447명 중 37명 (8.3%)으로, 우발적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133명, 29.8%)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살인미수 등의 경우 입건자 575명 중 7.5%인 43명이 가정불화를 범행 동기로 꼽았다. 이는 우발적 범행(213명, 37.0%), 기타(192명, 33.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범행의 유형도 다양하다. 가장이 가족구성원들 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6월 외도 문제로 다투다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 결국 징역형을 선고 받은 이모(48·여)씨 사례가 그 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 빌라에서 13년 만에 얻은 생후 53일배기 딸을 부부싸움 끝에 익사시킨 어머니 김모 씨(40·여)가 구속되기도 했다. 김 씨처럼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살해하는 사건 역시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부 중 한 명이 시부모나 장인·장모를 살해하는 일도 종종 세간에 오르내린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가정 내 살인사건을 단순히 개인적 불행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개인적 특성도 간과할 순 없지만 사회 현상과 연계시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정은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비춰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므로 가정이 병들어 간다는 것은 결국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분석할 수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회의 영향이 취약가정부터 차례로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가정이 건강해져야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바람직한 문화를 만들어나가게 되므로 매크로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너져가는 가정에 대한 실효성 있는 재건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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