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작장애인연합회 동작지회
회장 조승현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으세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애인을 한번 만나보세요.”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스르르 빠지는 절박함이 있습니까? 그건 부끄러움을 감추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이어가는 장애인들에겐 그저 그런 일상입니다. 살아 있으니 살겠다고 밥숟갈을 삼킬 때마다 울컥 치솟는 눈물을 가슴 속으로 주저앉히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눈 딱 감고 모질게 맘을 먹었더라면 살면서 질곡같은 고통을 참는 짓은 안 해도 되었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한순간에 눈앞이 캄캄해진다면 어떨까요? 아무 이유도 없이 동공에 통증이 밀려와 병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녹내장으로 안압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실명합니다." 뭘 어떡해야 주의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냥 주의하라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얼마 안가서 시력을 잃고 처음 세상을 접하는 일은 새로운 생의 시작이었는데요. 그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저를 만났을 때에 이야기를 몇 개만 옮겨볼게요. 펑펑 울면서 내 손을 잡고 어떡하지를 연발하다가 차마 내 앞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몸이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달았다”는 얘기를 뒤에서들 한답니다. 저를 보면서 건강한 몸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라도 깨달은 걸까요. 허구헌날 친구들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가정과 직장에 더 충실해지면서 “나는 이제 과음하지 않을 거다”, “저 사람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그 회사, 난 내가 다니는 회사를 감사하게 다녀야겠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요? 장애인 이야기라면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라는 냉담한 눈길인데요. 이 사람들은 좀 독특한 편이겠지요. 뭐 가족이 장애인이라면 다르겠지만, 장애인 이야기라면 아직 쌀쌀한 분위기가 보통입니다. 그런데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장애인이 되어 만났을 때에 펑펑 울며 자신을 돌아보았다니 교육적 가치가 높은 걸까요. 그렇다면 제가 시각장애인이 된 게 뭐 그리 나쁜 것도 아니겠습니다. 언제 제가 남의 삶의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이럴 때나 한번 남을 위한 도움을 주는 거지요.

저는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후 먼저 점자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컴퓨터도 배웠습니다. 전처럼 남의 도움을 바라지 않던 당당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지요. 감정을 극적으로 몰고 가 울고 짜는 동정적 스토리에 주인공이기 싫었습니다.

살얼음 밟는 기분으로 벌써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마침내 인권 활동가로 여러 지인으로부터 강의를 부탁받게 되었습니다. 뭐 할 수 있는 게 주둥이 나불대는 거밖에 더 있겠습니까. 한창 가정 경제에 신경 쓰고 노년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할 나이에 인생을 덮친 것은 세상과 단절된 듯한 절망감. 시각장애인으로 단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뱀의 대가리를 밟는 듯 아찔한 상황이 두렵고 가치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낭패감에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웠습니다. 오늘을 열심히 살 수밖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처지를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가슴 아프지만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보통 이상의 인내력을 발휘한 아내와 가족 덕분이겠지요. 냉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도에 장애인이 되면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걸 가끔 보았지요. 가족에게 냉대도 받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고 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이라도 재활하겠다고 결심했지요. 이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많은 눈물이 필요했지만 지금 다시 웃습니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로 합니다.

그러나 사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게 느껴집니다. 휠체어를 타고 아무리 뱅뱅 돌아도 들어갈 식당이 없어 굶는 장애인, 여전히 지하철 입구는 미로 같아서 바로 코앞에 두고 개미처럼 뱅뱅 도는 시각장애인.

이대로 절망에 빠져 자기 속에 갇혀 있고 싶지 않습니다. 역설적이지만 힘겹게 사는 장애인으로부터 희망을 건네받아야 합니다. 보통의 일상적 가치가 크게 소중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간은 장애인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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