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국가원로회의 원로위원)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중 한 분으로 손꼽히는 미국의 ‘존 맥아드’ 목사를 지난달 19일 미주 중앙일보 장열기자가 단독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에서 한국교회의 부패한 단면을 단호하게 질책했죠. 입에는 쓰나 몸에는 좋은 충고입니다.
그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잃은 것은 단 하나 성서(聖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단 기독교의 일 뿐이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종교 일반에 대한 충고로 여겨져 옮깁니다.
- 현대 교회는 무엇을 잃었나?
성경(聖經)이다. 교회가 사수해야 할 절대적 가치가 성서이다. 교회의 생명은 그 안에 있다. 예수에 대해 가르쳐야 하고, 그 말을 지키고 따르는 걸 말한다. 지금 교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축복했고, 교회는 그 말씀 위에 세워졌다.
- 성경으로 돌아가려면?
모든 문제는 성경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문화와 사회가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기보다, 먼저 예수가 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심각하다.
그건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이제 하찮은 곳으로 전락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목소리를 잃었다. 본질을 잃은 채 세상에만 받아들여지기 위한 몸짓이 오히려 교회를 세상과 구분되지 않는 무의미한 곳으로 만들었다.
- 교회는 왜 몸짓에 치중했나?
우선 ‘진정한 교회(true church)’의 개념은 포스트모던 사회와 상충된다. 지금은 성경의 절대 권위가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사회는 점점 개인화되면서 ‘나’만의 세상, 가치, 영성 등을 창조한다. 물질주의에 기반한 소비자적 개념과, 상대적 가치를 바탕으로 개인이 신념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시대가 됐다. 결국, 교회는 그 흐름을 좇다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했다.
- 그 말은 한국 교회가 자주 듣는 말이다.
이제 미국은 기독교의 가치를 잃었다. 그걸 잃는 데 200년이 걸린 셈이다. 과거 미국은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기독교 중심’이란 말이 점점 ‘기독교적인 문화’로 바뀌다가, 이제는 ‘신이교주의(neo paganism)’의 개념으로까지 변질됐다. 한국은 그 과정을 밟기도 전에 갑자기 끝난 듯하다.
- ‘끝났다’는 의미는?
한국은 짧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갑자기 교회가 커지면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 결과 기독교 가치가 내부적 또는 사회적으로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교회는 힘과 권위만 갖게 됐다.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 한국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급격한 물결에 휩쓸리며 본질을 잃어갔다.
- 한국엔 3억 달러(약 3000억원)짜리 교회가 세워졌다. (최근 한국 교계의 이슈였던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과 사랑의 교회 건축 논란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죠. 심각한 표정으로 ‘정말 3억 달러가 맞느냐’며 몇 번이나 되묻다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답변을 했습니다.)
기독교엔 지금 ‘거대한 빌딩(empire building)’이 너무 많다. 대개 교회 확장은 목사의 개인적 야심과 연결된다. 많은 경우 목사의 자아(自我)가 교회 크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3억 달러짜리 건물을 세우려 했다면 반드시 동기를 철저히 진단하고, 성경에 따라 자신에게 강력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게다가 학위를 ‘표절’로 얻었다는 건, 야심적 성향에 대한 증거 아니겠는가.
- 비성경적이란 뜻인가?
“현재 한국의 물가나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느 정도 교인의 편의를 위해 건물을 지었다 해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가. 차라리 그 돈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사용 했다면… 정말 심란하다.
- 최근 한인 교계에선 목회자 청빙(請聘)도 문제였다.
미국 교계도 똑같다. 양떼의 중요성보다 목회자의 개인적 상황이나 야망이 앞서면 그렇게 된다. 어느새 목회자가 왕 또는 유명인사가 되다 보니 교인들도 그런 목사를 찾는다. 바른 청빙은 목회자와 회중(會衆)들, 청빙한 교회가 투명한 과정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다가 모두가 기쁘게 동의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 목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넓이보다 깊이다. 대형교회처럼 교회가 넓어지는 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더라도 목사의 언변, 영리함, 전략 같은 것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깊이는 그런 식으론 불가능하다. 숫자를 떠나 맡겨진 양떼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고 복음 안에서 갖는 깊이는 오직 하나님을 위한 영광이다.
어떻습니까?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교회, 아니 종교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이 아닌 종교 본연의 교조(敎祖)정신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일어버린 성서를 되찾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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