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현 교수(숭실대 사회복지학부)

지난 1월 24일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사회를 개최하고 “흡연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제기안”을 심의ㆍ의결하여 담배회사를 상대로 진료비용환수소송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계획은 지난 해 8월에 있었던 건보공단의 정책세미나에서 제기된 흡연의 건강영향 분석 및 의료비부담의 결과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이 정책세미나에서는 빅데이터의 분석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흡연자의 질병발생 위험이 비흡연자에 비해 평균 2.9배~6.5배에 달하며, 흡연으로 인한 암, 심장, 뇌혈관 등 35개 질환의 추가 진료비 지출이 연간 1조 7천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흡연은 개인의 기호로 흡연자의 흡연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뿜는 담배 연기는 자신만이 아니라 비흡연자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기에 비흡연자의 혐연권이 우선 되어야 한다. 개인의 기호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면 그 대책도 개인차원에 머물러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국내ㆍ외에서 흡연자 개인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막대한 로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응하는 담배회사에 이긴 사례는 없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주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응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근거법을 제정하므로 흡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이끌어냈으며, 흡연자 비난의 사회적 분위기는 담배회사 비난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용 환수의 문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어야 한다.
이미 1964년에 미국 공중보건국장인 테리(Terry)는 ‘흡연과 건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흡연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 차원의 문제임을 명확히 밝혔다. 그렇기에 흡연자의 흡연행위를 통제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담배를 제조하는 회사에게 흡연으로 인하여 추가되는 진료비를 부담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사회적 대책이 요구된다. 지난 2007년 이후 있었던 담배소송건은 ‘담배는 결함있는 제조물이 아니며, 제조상 하자도 없고, 표시상의 결함도 없으며 위법행위도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 계류되어 있다. 이는 담배제조상의 위법성에 초점을 두었을 뿐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을 간과한 판단인 것이다. 또 흡연권도 헌법상의 권리라고 주장하므로 담배소송건이 패할 경우 이 문제는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가 담배소송의 근거법을 입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담배의 규제에 관한 세계보건기구 기본 협약’에 2005년 8월 19일에 체결하였기에 WHO 회원국이 이행해야 할 ‘담배의 규제를 위하여 적절한 경우에는 보상을 포함하는 형민사상 책임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입법상의 조치를 취하는 권고’를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사회문제가 명백한 사안에 대해 정부가 도둑을 보고도 짖지 못하거나 새벽이 되어도 울지 못하는 닭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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