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범 단장이 오렌지멘토링농구단 수업에 참여한 어린이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4월 5일 오전 9시30분, 흑석동에 위치한 한기범스킬아카데미(동작구 서달로8가길9 성우빌딩)에서 한기범농구교실 수업이 진행되었다. 지난 3월 운영을 시작한 유소년 농구교실의 다섯 번째 수업이다. 
인근 초등학교의 1학년부터 4학년까지 6명의 어린이들이 토요일 아침 단잠을 포기하고 농구교실로 모여들었다. 지도를 맡은 김현지 코치(25세)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형주 부단장(한기범농구교실 업무 총괄)이 일찌감치 도착했고 한기범 단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한기범 단장의 등장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이들이 한 단장의 허리춤 언저리에 옹기종기 모여든 그림이 인상적이다.
이 날 수업은 한기범 단장이 직접 지도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분주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최대한 마련하고자 노력 중이다. 유년시절의 소소한 주말 한 때가 아이들에게는 평생 기억으로 남을 재산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구교실이 진행되는 공간의 첫 인상은 의외로 협소하고 열악하다.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에 물기가 한가득 고여 있고, 양동이로 위층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내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운동을 하는 장소인 만큼, 보다 쾌적한 환경을 위해 개․보수 및 인테리어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였다.
공간의 열악함이 한기범 단장과 아이들의 열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수업 초반에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의 집중력이 순간순간 향상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스마트폰에서는, PC게임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건강한 활력이 여섯 소년을 에워쌌다. 한 단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이마에도 이내 굵은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공이 자꾸 손에서 떨어져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기본기 과정으로 드리블을 가르치던 한 단장이 아이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아이 하나가 갑자기 신발을 벗었다. 뭔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끄러운 줄도 모르고 코트를 누비는 줄무늬 양말과 한켠에 벗어놓은 낡은 신발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수업의 막바지는 3대3 시합으로 진행되었다. 수업 중에는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기본기를 배우던 아이들이 바야흐로 ‘경기’에 임하자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승리를 위한 갈망 때문에 마음은 급해졌는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온갖 반칙이 난무한다. 공이 손에 들어오면 보물단지를 가슴에 품은 듯 꼭 끌어안고 골대까지 내달리기 바빴다. 한기범 단장과 이형주 부단장, 김현지 코치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드리블! 드리블!”을 외치느라 목이 쉴 지경이었다. 수업을 참관하던 어머니들도 한 목소리로 이에 합세하며, 작은 체육관을 가득 메운 열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농구는 규칙이 매우 많은 스포츠다. 글로 가르치면 쉽게 잊을 수도 있겠지만, 몸으로 체득한 것은 온전히 자기 것이 되기 마련이다. 한기범 단장은 워킹(트래블링) 바이올레이션(공을 잡고 3걸음 이상 걸어가면 상대편에게 공격권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규칙)을 생생하게 가르치고, 점프볼 상황을 설명하고, 자유투는 왜 1점 밖에 주지 않느냐고 의아해하는 아이를 친절하게 납득시켰다. 땀에 흠뻑 젖은 미래의 꿈나무들은 온 몸으로 룰을 배워나갔다.
아무리 마음이 앞서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들의 태도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같은 편끼리 연신 “패스!”를 외치고 슛을 독려하며 팀플레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기술적으로는 서툰 협동이었지만 프로팀 뺨치는 멋진 팀워크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시작 후 10여분, 드디어 첫 골이 나왔다. 흑석동의 작은 골목길이 떠나갈 듯한 함성도 함께 터졌다. 아이들의 표정에 어마어마한 성취감이 넘쳐흘렀다. 월드컵 4강에 진출하던 순간 우리 대표선수들의 얼굴이 저랬었나 싶을 정도였다. 자세를 한껏 낮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달리던 한 단장도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실업농구의 전성기 시절 최강 기아산업을 이끌고 코트를 호령하던 스타 플레이어 대신, 중년의 유소년 지도자 한기범이 그 곳에 있었다. 어느 쪽의 열정이 더 근사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전성기의 엘리트 체육인 한기범 선수와, 2014년 현재 사회사업가이며 유소년 지도자인 한기범 대표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골문이 열리자 경기는 과열양상으로 치달았다. 공이 향하는 곳으로 여섯 명 아이들의 움직임이 집중되었다. 상대의 몸통을 붙잡는 파울을 범하는 대신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디펜스에 몰두했다. 누군가 공을 놓치기라도 하면 일제히 슬라이딩을 하며 볼을 다투었다. 저마다 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한 덩어리가 된 아이들은 지도자들이 떼어놓기 전까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그림 같은 인터셉트 장면도 몇 번인가 있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경기 결과는 6:4. 점수와 승부를 떠나서, 1990년대 농구대잔치 결승전 이후 이렇게 엄청난 경기가 또 있었나 싶다. 그럴 듯한 유니폼도 없고 제대로 된 농구화도 없는 여섯 명의 꼬마들이 그 어떤 스타군단보다 멋있게 보였다. 이들은 오는 6월 22일 중구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리는 길거리 농구대회에 동작구를 대표해서 참가할 계획이다.

오렌지멘토링농구단의 수업이 진행된 한기범스킬아카데미는 골목길 상가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다. 사당문화회관의 대표적인 생활체육강좌로 6년 동안 운영되었던 농구교실이 급작스럽게 중단되는 고충을 겪었음에도 한기범 단장의 동작구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다르다. 관내 체육센터 곳곳에 유료 농구강좌가 개설되어 있지만, 어린이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무료 농구교실은 찾기 어렵다. 한 단장은 이형주 부단장과 함께 장소를 물색했고 사비를 털어 이 공간을 마련했다.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추진을 망설이지 않았다.
한기범 단장은 농구명가 중앙대학교에서 찬란한 청춘을 보냈고, 사당동에 10년 넘게 거주하며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동작구민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동작구 홍보대사로 역임되어 활약하고 있다. 이런 한 단장이 적극적으로 재능기부를 실천하고 있음에도 제반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관내 유소년을 위한 무료 농구교실의 출범을 적극 환영한 동작구청도 예산 문제 등으로 당장 재정 지원을 현실화하기는 곤란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구 관계자는 “관계부서와 협의해서 농구교실의 원활한 운영을 돕기 위한 유휴공간 활용방안 등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편, 한기범 단장은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병마로 고통받던 중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사회사업에 뛰어들었고 ‘사단법인 한기범희망나눔’의 대표를 역임하며 심장병 어린이, 다문화가정 어린이, 농구 유망주 등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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