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신문이 만난 인물

동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지원팀 후인티튀크엉 씨
“다문화는 양보와 이해로 만드는 새로운 문화”

 
계절에 어울리는 만남이었다. 동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김예리)에서 만난 후인티튀크엉(HUYNH THI THUY KHUONG) 씨는 5월의 햇살처럼 맑고 환한 사람이었다. 성은 후인, 이름은 티튀크엉이지만 한국에서 만난 인연들은 줄여서 ‘크엉’ 씨라고 부른다.
크엉 씨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자 여성이다. 고국에서는 성악을 전공하고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인연이 닿아 2년간 장거리 교제 끝에 2009년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노량진동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했고, 이제는 5살 아이를 키우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쁜 동작의 주부가 되었다.
고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엘리트로서의 삶을 살았던 스물다섯 아가씨가 먼 나라로 시집을 왔으니 적응이 쉬웠을 리 없다. 언어를 모르는 상태로 시작한 한국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남편이 일을 하는 동안 외로움과 무료함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아내를 지켜보던 크엉 씨의 남편은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볼 것’을 권유했다. 귀한 막내딸로 자라나 공부 밖에 몰랐던 크엉 씨에게는 낯선 종류의 일이었다. 크엉 씨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기꺼이 동의했고, 사회를 향해 용감하게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일이 고되다는 생각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사람들의 호의를 거절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표현을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정착 초기의 크엉 씨는 간단한 표현도 하지 못해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김치를 권하는 지인들에게 완곡한 거절의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매운 김치와 눈물을 함께 삼키면서 ‘한국어를 꼭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필사적으로 한국어 공부에 매달린 크엉 씨는 남편을 통해 동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한국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2013년 공감소통가 양성교육을 수료하고 2014년 1월부터 동 센터에서 통․번역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김예리 센터장, 안진경 사무국장, 조성현 팀장에게 “센터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2013년 안전행정부 자료에 따르면 동작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16,498명이다. 베트남 출신 외국인 주민은 중국-한국계(10,711명), 중국(2,934명), 미국(746명) 다음으로 많은 408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2012년 통계 357명보다 51명 늘어난 것으로, 베트남 출신 가족구성원이 있는 다문화가족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동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이용한 회원 현황에서도 중국 198명에 이어 베트남이 138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크엉 씨는 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한국생활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직분을 맡고 있다. 아직 한국어 실력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이 배우기에 어렵기로 소문난 한국어를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수준으로 구사하기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쏟았을 지 짐작할 수도 없다.
“아직 못 알아듣는 사투리도 많고, 쓰는 것도 부족해요. 그래서 항상 열심히 공부해야만 해요. 제가 노력을 게을리 하면 베트남 출신 여성들과 그 가족을 돕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한국어를 완벽하게 읽고 쓰고 말하고 싶은 욕심에 한 순간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녀지만, 5살 아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것도 소홀하지 않는다. 아들이 어머니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알고 베트남 문화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외가쪽 친척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한참 말을 배우는 어린 아들이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모습을 남편도 대견하고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인다.
2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큰 그림이 머리에 그려졌다.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 묻자 크엉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위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문현답이 오가는 중에 한국어가 이렇게 듣기 좋은 말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엉 씨는 다문화를 ‘양보와 이해로 새롭게 만드는 문화’라고 정의했다. 지금의 그녀가 있기까지 남편은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을 향한 사랑이 커지고 한국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있다”며 말갛게 웃는 모습이 수줍은 새색시 같다. 
그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후에도 베트남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고향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은 ‘평안함’과 ‘높은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은 이름을 닮는다고 했던가. 크엉 씨와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이 사람의 고향 베트남은 얼마나 예쁜 나라일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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