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김현욱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지나 열대야가 올라오는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계기로 우리는 잠시나마 6·25 전쟁터에서 이름도 없이 산화한 14만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어느 조사에서 대학생 400명에게 6·25전쟁의 발발년도를 쓰라고 주관식 과제를 줬더니 그 중 60.8%만 정답을 맞혔다고 한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아닌 대학생의 40%가 6·25전쟁의 발발년도를 모른다는 것은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우리는 북한이 저지른 6·25전쟁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도발 위협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대처해야 한다. 6·25전쟁은 지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1129일간의 전투다. 대부분은 막연하게 6·25전쟁이 한국군을 중심으로 소수의 유엔군이 참전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다. 6·25전쟁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유엔군과 한국군이 지켜낸 전투다. 6·25전쟁에 국군은 군인 120만 명과 노무자를 포함한 민간인 30만 명을 합해, 대략 150만 명 정도가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엔군은 미국 등 16개 전투부대 파병국과 5개 의료지원국, 42개 전시물자 지원국이 참전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유엔 회원국 93개국의 68%인 63개국이 대한민국을 지원했다. 참전 유엔군은 한국군보다 훨씬 많은 194만 명이었다. 그 중 미국의 아들 딸 180만 명이 알지도 못하고 만나본 적도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한 것이다. 유엔군은 15만 400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거나 실종됐다. 전사자 4만 1000명의 90%가 미군이었다. 6·25전쟁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한국군이 혈맹으로 지켜낸 전투다.
우리나라는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고 있지만 미국과 영국 등은 전쟁이 끝난 날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작년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지정했고, 캐나다도 7월 27일을 '한국전 참전기념일'로 지정했다.
우리도 지난해 유엔군 참전의 의미를 상징화하기 위해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제정했다.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은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유엔군을 비롯한 동맹국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재정립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6·25전쟁에 참전해 혈맹으로 맺어진 인연을 후대에까지 계승·발전시킴은 물론, 유엔군 참전의 중요성을 영원히 기억하며 감사를 표하는 날이 바로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 거룩한 희생과 헌신이 있어 가능했던 것으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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