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국가원로회의 위원)
 
지방에서 중2 아이 문제로 상담을 온 부모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받아오거나 챙겨야할 준비물이 있으면 밤에 미리 챙겨 놓으면 좋을 것을 꼭 아침에 챙기고, 또 준비하는 것도 급한 것 없이 느긋하다는 것입니다. 청소를 맡기면 내내 하지 않고 놀다 마지막 순간에 몰아서 한다는 것이죠. 이런 꼴을 차마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크게 문제로 삼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긴 하니까 말이죠. 시기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기질상의 차이로 인한 결과일 뿐입니다.
MBTI 성격유형 검사로 보면, 엄마의 유형은 판단형(J)이고 아이의 유형은 인식형(P)이라고 합니다. 엄마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속이 시원해서 순서에 맞게 딱딱 처리되어야 하지만, 아이는 뭉뚱거려 처리를 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해 낼 것은 해 냅니다. 평소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기도 하죠.
이런 부분에 일찌기 관심을 두었던 심리학자는 칼 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타고날 때부터 가지는 성향 중에 외향성(E)과 내향성(I)이 있고,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는 성향으로 감각형(S)과 직관형(N)이 있고, 그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사고형(T)과 감성형(F)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밖으로 내어보는 방식으로 판단형(J)과 인식형(P)이 있습니다. 이것이 MBTI의 기본 뼈대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MBTI나 애니어그램과 같은 성격유형검사들이 있고, 학교에서도 다면적 인성검사 같은 것을 통해서 아이의 타고날 기질에 맞는 학습방안, 직업선택의 기준을 잡아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위의 상담사례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조급증과 여린 마음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냥 자신의 기질에 맞게 공부도 그런대로 잘 하고 있고 독서나 취미활동도 잘 하고 있고, 자기 앞가림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속 터진다며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합니다. 부모는 속 터질 지라도 아이는 속 터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타고난 기질상의 차이 때문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보고도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고 또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처리하는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식이라 할 지라도 나와 다른 기질이라면 부모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는 부모는 자칫 자녀의 등을 떠미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되라고, 빨리 크라고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죽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화하는 새의 껍질을 깨지 마십시오. 강물이 느리게 흐른다고 강물의 등을 떠밀진 마십시오. 액셀러레이터도 없는 강물이 어찌 빨리 가라 한다고 속력을 낼 수 있겠습니까. 달팽이가 느리다고 채찍질 하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볼 때는 느림보일지 모르지만 달팽이 세계에는 터보일 수 있으니까요.
기질은 타고날 때부터 가지는 것인데 가족관계의 관계경험과 이후 또래들을 비롯한 외부환경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 성격입니다. 그러니까 성격의 범위는 기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격의 좋고 나쁨의 여부가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질이나 성격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성품’이 잘 만들어진 사람이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품은 수용공간이 넉넉하고, 화를 조절할 줄 알며 자기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를 조율하고 감정을 통제할 줄 알며 나아가 배려와 헌신, 사랑, 우정 등과 같은 추상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녀의 기질이나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마시고 성품을 잘 다듬은 아이로 양육하고 교육하십시오. 그래야 그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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