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동작지회장 조승현

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73세 된 시각장애인입니다.
지하철 안은 출근할 때는 물론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로 북적이지요. 일을 하다가 어디를 가려고 지하철을 타도 사람이 많기는 여전합니다. 물론 어디를 가건 다들 볼 일 때문에 가시겠지요. 그런데 노인 승객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노령화 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게 실감 나도록 많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빠지지 않고 너무나 와닿는 장면이 들어옵니다. 나이가 많은 분이나 장애인, 그리고 임신부 등 앉지 않고는 힘든 사람들이 앉아서 갈 수 있는 노약자 보호석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은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다투는 노인들입니다. 임신부는 힘들어서 노약자 보호석에 앉습니다. 그런데 임신부가 자리에 앉으면 어떤 노인은 민망할 정도로 따가운 눈총을 줍니다. 잠든 임신부를 툭툭 건드려 깨우시고는 일어나라고 하시던 할아버지. 남들이 들으라는 듯 임신이 벼슬이냐며 혀를 끌끌 차시던 할머니.
그것뿐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 싶으면 다짜고짜 젊은 놈이 어쩌고 하며 일어나기를 요구하는 할아버지. 자리 양보하라고 신경질적으로 젊은것들이 어쩌고 구시렁거리며 쏘아붙이던 할머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열하면 오늘 밤을 새워도 모자라지요.
일반석이 비어 있다면 일반석에 앉지만, 어떤 연유로 꼭 자리에 앉아야 할 사람들은 많습니다. 임신부나 장애인이나 노인들만 앉아서 가라는 건 아니지 않나요. 어떤 이유로 앉아서 가야 할 사람들은 앉아서 가야겠지요. 말은 안 해도 저 사람이 앉아서 가야 할 사람인지 척 보면 알잖아요. 물론 먼저 자리 양보를 해주시는 어르신도 많으시고 학생들도 많지요.
저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운동할 겸 아예 자리에 앉기 싫어 문 바로 앞에 기둥 붙잡고 서 있는 편이지만, 이런 저에게 굳이 다가와 자리에 앉히려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평소에 운동도 못하는데 운동할 겸 그냥 서 있겠다고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약자 보호석 쪽에는 아예 가지도 않지만,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일어난 다툼을 보고 저도 노인 축에 끼지만, 노인들이 참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이었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노약자 보호석에 앉은 사람에게 탁한 가래 끓는 목소리로 젊은 사람이 노인한테 자리 양보하라고 야단치는 듯 말했습니다. 참 달갑지 않은 장면이지요. 나중에야 앉으신 분이 60대 후반인 여성인 걸 알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이 좀 일어나라고 하시며 젊은 여자가 왜 앉아서 가냐고 덧붙입니다.
그 여성분이 다리가 아파서 병원 가느라고 앉았다고 대답하며 그대로 앉아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싸움이 시작되었지요. 할아버지가 먼저 앉아 있는 여성분을 툭툭 건드리며 일어나라고 재촉합니다.
화가 난 그 여성분이 일어서면서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 네가 뭔데 일어나라 말라고 참견이냐’고 할아버지 가슴을 밀쳤습니다. 이내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지요. 서로 오가는 욕과 몸싸움까지 참으로 꼴불견을 연출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법까지 들먹이며, 민망할 정도로 심한 말이 오갔습니다. 다 고만고만한 어른인데 어른 노릇을 못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른이 아이들처럼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어리다고 보이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사람이 살면서 품격은 지니고 살아야 하건만, 집에서 아이들 앞에서도 저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욱 놀랄 일은 두 사람이 다투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여성분이 내리자고 할아버지 손을 잡아끌고 내렸습니다.
그런데 강제로 할아버지를 끌고 내린 그 여성분은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에 재빠르게 다시 올라타고 할아버지만 내려놓았습니다. 다리가 아파서 병원 간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날쌘 동작이었지요, 이런 장면을 구경하던 어느 청년이 킥킥 웃으며 대박이라고 감탄하는 바람에 지하철 승객들의 웃음소리가 퍼져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이 상황을 끝까지 살피고 난 후에 이런 문제  해결책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한창 바쁜 출퇴근 시간, 그러잖아도 피곤한 직장인들. 꼭 앉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 배가 남산만 한 임신부. 이런저런 상황을 나열해 보았을 때 이거 다 지하철에 무임승차하도록 만든 게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좀 했습니다.
만약에, 이건 만약이지만, 무임승차를 대신하여 어느 정도 교통비를 지급하고 지하철 탈 때마다 요금을 지불하고 타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러면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이 돈 아끼느라고 아무 때나 어디든지 마구 다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잘못한 생각일까요?
이런 생각에 돌팔매, 아니 글팔매질 당하지는 않을런지 심히 걱정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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