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충남 보령시에 위치한 호도로 쭈꾸미 낚시를 가자고 해 12월 25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이번 여행을 떠난 이들은 총 6명으로 부부 3쌍이 함께했다.
대천항에서 배를 타고 약 40여분을 나가야 하는데 당일 호도로 들어가는 배는 미리 예약을 했지만 12월 27일 나오는 배는 예약을 못했다고 25일 출항 때 나오는 배를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는 티켓의 수량은 많지 않고 현지주민을 위해 현장에서 구매하는 수량이 많아 외지인의 불편이 많은 것이 조금 아쉬웠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섰으니 길이 막히지 않아 대천항에는 6시 30분경 도착했다. 대천항 터미널 부근 순두부집에서 순두부 백반으로 식사를 했다. 식당 사장님의 구수한 입담과 정담이 처음 찾는 손님에게도 거부감 없이 친근감을 갖도록 했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대천에 정착한지 8년.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 불황이 계속돼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일행 중 한사람이 낚시를 즐겨 일 년에 2~3번씩 호도에서 낚시를 즐기는데 일주일 전에도 호도에 들러 바지락을 30kg이나 캐고 우럭도 10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가족끼리 낚시를 가 놀래미를 100여 마리 잡아왔다고 여러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우리 새마을금고에도 회를 잔뜩 떠 와서 직원들이 포식을 하기도 했다.
8시에 출항하는 배로 호도까지는 40여분이 걸려 약 9시경에 호도항에 닿았다. 호도는 면적 약 1.33㎢의 조그만 섬으로 ‘여우를 닮았다’해서 호도라 명명했다고 했다. 70여 가구 약 200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 어귀를 지나 평탄한 작은 구릉을 넘으면 활처럼 휘어진 1.5km의 은백색 해변이 펼쳐져 있고, 포근한 느낌을 갖게 하며 해수욕장과 낚시 그리고 싱싱한 해삼, 전복,소라, 성게 등의 해산물이 유명하며 섬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제법 큰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은백색 규사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라고 했다.
호도항에 도착하니 민박집 사장님이 리어카를 끌고 마중을 나와 계셨다. 민박집 사장님은 짐을 옮겨 여장을 풀고 잠시 쉰 다음 미리 쳐 놓은 그물을 걷으러 가자고 했다. 그물은 민박을 예약할 때 미리 부탁을 해서 하루 전에 사장님이 직접 쳐놓았다고 한다. 손님이 도착하면 함께 그물을 걷어와 회를 해 먹기도 하고 다음 일정을 소화한다고 했다.
그물은 민박집에서 10여km 정도 떨어져있는 멍덕도라는 무인도 뒤편에 쳐놓았다. 통상적으로 그물 1개를 쳐 주고 30만원을 받는데 단골로 오는 분이고 며칠 전에도 왔다갔다고 행여나 하고 2개를 쳐 놓았다고 했다. 첫 그물에서는 광어 6마리가 걸리고 우럭이 몇 마리 걸렸지만 씨알이 굵지를 않았고 두 번째 그물에서는 우럭 몇 마리 외에 그물에 걸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참돔이 한 마리가 걸렸다. 많이 걸릴 때 한 그물에서 걸리는 양보다 훨씬 적은 양이라고 했다.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고 드넓은 바다위에서 자연을 즐기는 게 한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잡아온 생선을 회쳐 민박집 사장님과 같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민박집 사장님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얘기를 듣다보니 민박집 사장님은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분이지만 더없이 포근한 마음씨와 가족끼리의 우애, 돈독한 애정, 서로 돕고 의지하는 희생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호도에서 [온양민박]의 주인장이라면 ‘호도의 터주대감’ 소리를 듣는 사장님은 올해 나이가 70세로, 부인(66세)과 1980년에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고 한다. 두자녀 중 아들은 사고로 잃고 딸만이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호도에서는 증조부 때부터 약 200여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사장님은 2남3녀 중 장남으로 17살부터 동네부잣집 어선에서 선장을 해 일찍부터 뱃일을 했다고 한다. 시골생활이나 어촌생활이나 옛날 우리나라 대가족 제도 하에서는 장남이 부모 역할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키워왔던 게 우리네 풍속! 사장님 역시 동생들을 키워 육지로 시집 장가보내고 혼자 섬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민박을 시작한지 20여년, 호도가 관광지로 외지에 알려지면서 객지로 나갔던 동생들이 다시 호도로 돌아오고 지금은 넷째 여동생만 광명에서 살고 모두가 호도로 돌아왔다고 했다.
동생들이 호도로 돌아온 이유는 민박집 사장님의 남다른 가족애와 동생들을 위한 배려가 큰 작용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동생들을 배려하는 장남의 부모 같은 배려가 동생들을 고향으로 불러드리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무슨 이익이 생기면 자기보다 동생들에게 먼저 배려하고 챙겨주고 자기는 희생하는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동생들도 형과 오빠를 존경하고 따르게 됐다고 했다. 동생들이 호도로 돌아오고 난 후 사장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9시경, 새벽 4시쯤에 무슨 일이 없는지 3남매 집을 둘러본다고 한다. 요즘도 70세 고령인데도 새벽 4시만 되면 동생네 집들을 어김없이 돌아보며 낮에도 시간이 나면 동생네 집들을 하루에도 2~3번씩 순찰하는 게 일과라고 했다.
작년 여름 KBS기자들이 호도에 들렀다 주민들로부터 민박집 사장님 이야기를 듣고 다큐공감 ‘5남매 한 지붕 밥 먹고 살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KBS 6시 내 고향’에도 방영돼 유명인이 됐다고 했다.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민박을 해서 생을 영위하지만 마음만은 몇백억 몇천억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풍성하고 정감이 가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 많은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쓰고 동생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법정다툼을 벌이는 작금의 실태를 볼 때 배우지 못하고 가진 건 많지 않지만 동생들을 배려하고 욕심을 내려놓은 사장님의 가족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일일까 생각했다.
몇 년 전 폐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에 좋아하던 술 담배도 모두 끊고 지금은 건강도 많이 회복되셨다고 했으며 부인은 66세 고령인데도 아직까지도 바다에서 물질을 해 5~6월에는 해삼을 잡고 9~11월에는 전복, 굴을 채취해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고 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 그래서 3대거지가 없고 3대부자가 없다고 한다. 적당히 가지면 베풀고 나눌 줄 알며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가지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다큐공감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전국에 선행을 알리는 훌륭한 생을 살아온 민박집 사장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베푸는 미덕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민박집 사장님의 변함없는 가족사랑에 경의를 표하고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는 가족 사랑으로 호도의 터줏대감으로 동생들의 영원한 파수꾼으로 건강하시길 기원해본다.

글쓴이 : 박형권 (경남 합천 출생 / ㈜의회시사 신문사 동작포커스 대표 / (사)바르게살기운동 동작구 협의회장 / MG새마을금고 한강 이사장 / MG새마을금고 동작구 이사장 협의회장)

저작권자 © 동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