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은 우리끼리의 설을 보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신지 14년이 되었고, 86세 어머니께서는 요양원에 계신다. 지난 추석 모임 때 엄마께서 연속으로 외출하여 우리들과 만나고 탈이 나셨다. 이제는 많은 가족들과 함께 모이는 것이 무리인가보다. 섭섭하지만 엄마의 안녕이 먼저다.
한때 엄마께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나쁜 치매 상태이셨다. 다행히 남양주의 천마산자락 아래 공기 좋은 곳에 엄마께 딱 맞는 요양원을 만나게 되어 차츰 안정이 되어가셨다. 1인 특실에서 주5일제 개인 요양사를 따로 붙여드리고, 우리가 나머지 2일은 돌아가며 당번을 정해 찾아뵙고 있다.
우리 팔남매 중 막내인 남동생은 5학년으로 막 진급하였고, 나는 일곱째로 딸 중에 막내딸, 맏언니는 막내보다 17살이 많다. 여덟 부부 16명에 아이들 11명, 총 27명이 모였다. 빠진 조카들은 세 명. 예전에 부모님까지 다 모이면 32명이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어 서서히 이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설 다음날, 경기도 수지에 있는 한정식집 2층의 제일 큰 방을 통째로 빌렸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세배를 할 수 있게 테이블을 정리했다. 다행히 온돌방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어서 가능했다. 가족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아이들이 다함께 세배를 올린 후 한명씩 돌아가며 지난 한해의 감사와 올해의 다짐을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는 두 아이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찾아 자기 역할을 잘하겠습니다!”, 군 제대한 아이는 “드디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두 번째로 결혼해 볼랍니다!”, 인공지능학과에 합격한 아이가 “감사합니다! 저 해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올해도 잘 살아 볼랍니다!”, “앞만 보고 가겠습니다!” 말할 때마다 어른들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써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마음을 담은 편지와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봄 햇살 같은 그날의 날씨만큼이나 따스했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조카들을 독립군이라 부르며 응원금을 전해주는 넷째언니가 엉덩이춤을 덩실덩실 추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서 퀴즈타임을 가졌다. 조카가 앱을 이용하여 아재퀴즈를 내고 우리들이 맞추면 자기 자녀에게 상금 1,000원이 돌아가는 식이었다. 차가 울면? 잉카! 우는 식물은? 우엉! 소나무가 삐지면? 칫솔! 가장 비싼 새는? 백조!(누군가는 전세라고 답을 해서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른들의 머리에서 쥐가 났다. 흰쥐였을까?
어른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쳐서 아이들도 함께 맞추기로 했다. 중간에 퀴즈 상금 액수도 올라가자 분위기가 확 바뀌어 먹잇감을 앞에 둔 야생의 그것들처럼 긴장감이 돌았다. 가장 압권인 문제는 세종대왕이 나온 고등학교는? 가갸거겨고교! 헐~~!!! 중학생 막내조카가 3,000원짜리 마지막 문제를 장식했다. 방금 화장실에 다녀 온 사람은? 일 본 사람! 하하하하~~~~

유쾌통쾌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은 우리들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가진 뒤 아이들은 볼링장으로, 여섯 딸의 남편들은 실내골프장으로 향하고, 여섯 딸과 두 아들 부부는 까페에서 가족회의를 가졌다. 지난 5년간 어머니 케어에 들어간 비용을 총정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상의했다.
아버지께서 엄마를 위해 남겨두고 가신 땅과 집을 팔아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데, 향후 7년 엄마케어플랜을 ABC 세 방법으로 짠 것을 살펴보더니, 100세 시대이니만큼 더 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100세 케어플랜을 다시 짜기로 했다.
까페에서 큰언니가 하는 말, “엄마께서 건강하셔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 즐거운 시간 갖는 것을 보셨다면 얼마나 행복해 하셨을까......”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탄식이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도 나이를 점점 배부르게 먹고 있는걸. 아직도 여덟 가정이 온전하게 건강하게 화목하게 지내고 있음에 한없이 감사하다.
예전엔 대식구가 모이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이들이 많이 성장한 만큼 올해의 설 풍경은 맛있게 익은 느낌이었다. 먼 훗날엔 또 오늘을 그리워할 것이다. 인생의 하이라이트 같은 날일지도 모를 오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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