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권
한강새마을금고 이사장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 어느덧 봄기운이 찾아와 오리나무, 참나무과 상수리나무는 새잎이 파릇파릇 나오고 산이 제법 푸르름을 더해간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 봄이면 새싹이 움트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낙엽 지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만 남고... 인생사도 마찬가지!
유년기를 지나 청˙장년기를 보내고 노년기, 황혼기로 접어들었다. 무엇을 하고 벌써 70 중반으로 접어들어 황혼기로 접어들었을까?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너무나 빨리 간 세월인 것 같다. 지금은 장수시대라 70~80대도 흔하지만, 40~50년 전만 해도 환갑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말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을 사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런 와중에 자식 키우고 공부시켜 결혼도 시키고, 보람 있게 살았다고 생각도 하지만, 욕심대로 안 되는 일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어떨 땐 엄청난 좌절감과 시련에 빠질 때도 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못 누릴까? 사람은 늙어가면서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어가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고 찾아오는 4고(苦)가 있다고 했다 “①병고(病苦) ②빈고(貧苦) ③고독고(孤獨苦) ④무위고(無爲苦)”가 그것인데, 만일 이중에 한 가지라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축복 받은 노인이라고 했다.
공자는 노년이 되면 모든 욕심의 유혹부터 뿌리쳐야 한다고 했다. ‘老慾(노욕)은 老醜(노추)’와 직결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어, 여기에 노욕이란 불청객이 5苦로 하나 더 추가된다.
흔히들 늙어갈수록 주위로부터 존경받고 환대받으며 품위 있게 살아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던가? 늙을수록 말을 적게 하고 듣기를 즐겨할 것이며 주머니는 열어 주위에 베풀기를 하라고 했다. 대접받기 좋아하고, 모든 일에 간섭을 하려 든다면 내 가족 내 혈육부터 멀어지겠지? 그래서 그런 말이 있었나 보다.
실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 보면, 언제나 대접받으려 하고, 잘난 척 하며 자기 주머니는 닫고 얻어만 먹으려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런 사람은 처음 한두 번은 같이하지만 길게 친분이 맺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세를 낮추고 실천하려고 무지 애를 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나 지인 나아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술도 사고 밥도 사고, 친분을 맺으려 노력한다.
현직에 있으니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아무런 하는 일 없이 안방노인이 되어 있다면, 그리고 대접받기 좋아하고 인색하게 군다면 누가 나를 찾아줄까? 그래서 젊은 사람들 어울리는 데도 자주 나가려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잘 끼워주지 않으려 해 속상해질 때도 있지만 도태되지 않으려 여러 가지 활동도 한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책도 읽고 신문도 보고 여러 분야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그런 꿈마저 버리면 노인세대로 도태될 것이기에.
존경하는 석학 김형석 교수는 올해 101세라고 한다. 그런데도 지금도 강의 및 집필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계신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다. 60은 인생 제2의 출발이라고 했으며 60세에 인생을 포기하면 30년을 잃게 되지만, 다시 시작하면 90까지 간다고 했다. 30세까지는 배우는 시기, 40~50대는 일하는 시기, 60~90대는 더 값지게 사는 시기라고 했다.
60대부터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으며, 지도자의 자격도 정신적 조건도 갖추어 사회에 봉사를 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고 했다, 그래서 도태되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걸인례(乞人禮)’라는 제도를 시행했던 내용이 있다. 고을 안에 80세 이상 노인들을 국가기관에 초대해 윗자리에 모시고, 잔치를 베풀고 ‘노인들의 입을 통해 백성들이 당하는 괴로움이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해 좋은 의견이나 지적이 나오면, 시정할 방법을 전해 듣고 국정에 반영하는 제도’였다고 한다.
80 넘은 노인들은 두려움이나, 이해타산 없이, 거침없이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했던 제도인 것 같은데, 현대는 노인들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부담만 주는, 귀찮은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픔이 밀려온다.
일본의 주부들은 정년퇴직을 하고 집안에 눌러앉은 남편을 ‘오치누레바’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젖은 낙엽’이라는 뜻이다. 마른 낙엽은 산들바람에도 잘 날아가지만, 젖은 낙엽은 한번 눌러붙으면 빗자루로 쓸어도 땅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집안에서 정년퇴직 후 늙은 남편을 부인이 밖으로 쓸어내고 싶어도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부담스런 존재라는 뜻이지만, 당사자인 우리 노인들에게는 심히 모욕적인 표현이다.
노령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젖은 낙엽 신세의 노인은 앞으로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계속 존경받는 위치에서 품위 있게 노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인생을 자기가 즐기며,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이 필요하고, 항상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위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게 나 자신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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