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매공원에서 찍은 나의 나목
바야흐로 나목의 계절이 왔다. 화려한 장식은 사라졌지만 나뭇가지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특별한 시기로 여겨진다. 저마다의 스타일로 매력을 발산하는 패셔니스타의 정지동작과 같다고나 할까? 가지 끝이 섬세할수록 가지 모양이 독특할수록 눈길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공원을 걷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나목을 ‘나의 나무’로 삼고 사진도 찍었다.
‘나목’ 하면 박완서가 1970년에 발표한 소설이 떠오른다. 6.25전쟁 당시의 암담하고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쓴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자 데뷔작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화가 박수근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를 모델로 예술과 삶의 갈등에 대해 풀어간 소설이다.
그의 사후 회고전에서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고난 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박수근 화가에 대해 그림 속의 나무처럼 죽어가는 고목인 줄 알았다가, 처절한 겨울에도 봄의 희망을 품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던 나목이었음을 깨닫게 된 데서 기인한 제목이다.
화가 박수근은 지금이야 소박하고 서민적인 ‘국민화가’로 불리며 그림 값도 최고치를 기록하지만 살아생전 늘 가난과 싸워야 했다. 가난했기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어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가난했기에 눈 수술을 받을 수 없어 한쪽 시력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종’을 그린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박수근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내가 만약 화가라면 무엇을 그리고 싶을까 상상해보니 ‘춤추는 나무와 비행하는 오리’가 생각난다. 얼마 전 건대병원에 갔다가 건대 안에 있는 ‘일감호’ 호수를 둘러보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하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호수 안에 비친 다양한 모습의 춤추는 나무들과 청둥오리 가족들이 빙글뱅글 물놀이하다가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라 비행하던 때의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집에 와서는 그때가 그리워 한동안 일감호앓이를 했다.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오리는 태어난 지 24시간 안에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과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이런 행위를 ‘각인’이라고 명명했고, 생명과학협회에서는 ‘인상찍히기’라는 공식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결정적 시기’라는 특정 시기에 발현되는 본능적인 학습 양식이 영속성을 지닌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면서, 한편 사람에게도 비슷한 특징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나목과 같이 가장 비루하고 낮은 모습일 때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찌 그 사람을 무한 신뢰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때가 바로 ‘결정적 시기’가 되고 상대방은 ‘마음의 엄마’가 될 것이다. 인생에서 단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인연의 끈이자 축복이리라.
2020년의 마지막 달이 열렸다. 창백하게 지낸 열한 달 동안에 멀어짐으로 깨닫게 된 소중한 가치와 사람들을 마음의 북극성으로 삼아보자. 또한, 우리의 상황이 고목처럼 보여도 무한한 생명력과 가능성을 품고 있는 나목일 거야! 하는 긍정의 눈으로 서로를 나목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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