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장 김영식

8월 29일은 우리의 주권을 일제에 강제로 침탈당한 경술국치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은 제2차 대전 패망 40주년 식사(式辭)에서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된다”는 말을 했다. 바이츠제커의 말은 독일인의 반성을 촉구한 말이니 그 의미를 달리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역사의 본질을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한일병합을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는 뜻으로 1910년 8월 22일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맺어진 합병조약은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통감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뤄져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일제의 조작가능성이 농후한 무효의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식민지배는 한국에 유용했다’, ‘한일합방은 동양평화를 위한 것이고 군국일본이 아시아를 구원했다’는 등의 망언은 끝이 없었다.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그러나 아베정권이 들어선 후, 아베내각은 침략역사 부정, 집단적 자위권 발동, 독도 영유권 주장, 고노담화 검증 등 무례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강제병합의 불법성이라는 본질은 비켜가고 아직도 아베신조 일본총리는 반성은커녕 위안부강제노동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하며 강제성을 입증할 증언이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즘은 연합군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조항도 개정을 통해 다시금 전쟁을 할 수 있게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이는 우리를 우롱하는 처사 아닌가?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사죄와 반성을 뛰어넘는 행동이다. 이전의 사죄와 반성 수준도 넘지 못했는데 역사교육의 문제나 독도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가? 최근의 독도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보라. 이것이 진정 사죄와 반성을 하는 이들의 자세인가?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 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한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이다.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하기 바란다.
안타깝게도 치욕의 역사는 100년을 넘기고 말았다. 오늘날의 경술국치 104년은 104년 전에 끝난 치욕이 아니다. 104년 동안 겪어온 치욕인 것이다. 경술국치의 날을 국민의 절반이상이 모르는 지금의 무관심으로 친일파의 후손들이 겁도 없이 날뛰고 소송을 하는 지금의 민족혼으로 100년이 더 있다한들 이 치욕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104년 전 나라의 국권을 일제에 의해 빼앗긴 경술국치를 무엇을 기념하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경술국치의 화두는 빼앗긴 하늘과 빼앗긴 땅에서 어떻게 살았어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하늘과 땅을 또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아직도 ‘경술국치’를 ‘한일합방’이라 가르치고 정당한 절차에 의해 ‘황후’로 추존된 분을 ‘민비’라고 폄훼해 부르며, 소리 높여 민족과 애국을 외치는 이는 많지만 국치일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치욕의 날을 맞으며 순국선열의 유지(遺志)와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라는 열매에 대해 그저 즐길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이 치열하게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해 감사하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애국선열들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우리 스스로가 먼저 가져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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