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춥지도 않고 눈도 거의 없었던 작년 겨울의 날씨와는 달리 올 겨울엔 벌써 세 번째 눈이 왔다.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이루니 아이들은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골목길엔 귀여운 올라프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사가 전혀 없지만 감동적인 풍경과 음악의 애니영화 ‘스노우맨(Snow Man)’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며 황홀한 눈꽃 풍경을 바라보는 상상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필자도 눈이 오면 치울 일이 걱정되고 넘어질까 염려가 앞선다. 언덕이 많은 이 지역으로 이사 왔을 때 겨울에 눈 오면 다닐 수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경사가 심할수록 동네 사람들이 힘을 모아 즉시 눈을 치우는 반면 평지의 눈을 치우지 않아 응달진 곳은 오랫동안 눈이 녹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눈 오는 날을 동네 공동체의 날 또는 이웃과 인사 나누는 날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이런 현상은 시험을 볼 때도 나타난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신중하게 잘 풀게 되는데, 오히려 쉬운 문제는 실수하기 십상인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안다’고 생각하면 노력을 하지 않아 점점 잘 모르게 되고, ‘모른다’고 생각하면 알려는 노력을 통해 점점 많이 알게 되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기억과 인지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자연스레 물음을 던지게 된다. 사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알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자신에 대해 2%밖에 알지 못하고 죽는다고 고백한 경우도 있다. 사람 역시 우주만큼이나 넓은가보다.
그런데, 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인지 오류의 아버지라 불리는 것이 있다. 바로 ‘확증편향의 오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준다고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용자의 취향을 고려해 정보를 추천해주는 AI 알고리즘에 의해 생각의 양극화는 더욱 가속되고 있다. 이는 올바른 가치와 신념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을 방해한다. 자기만의 생각에 갇히게 되면 지구평면설이나 음모론, 가짜 뉴스에 잘 속는 결과를 가져온다.
확증편향을 극복할 수 있으려면 “내가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앎을 쌓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전에 한때 ‘나와 닮은 지도자 스타일은 누구?’라는 간단한 테스트의 재미를 누린 적이 있다. 주변 지인들과 함께 해보았는데 비슷하게 나오는 것 같아 신기해서 문항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 누가 결정되는지 확률을 분석해 보기도 했다. 그 테스트 결과에서는 나와 잘 맞는 지도자, 잘 맞지 않는 지도자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와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실은 나를 발전하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반전이 숨어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주인공 존 키팅 선생님은 학생들의 생각을 넓혀주기 위해 책상위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행동들을 한다. 우리도 가끔은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를 해보면 어떨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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