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맘 먹고 오랜만에 소중한 지인 세 명을 만났다. 무척 반갑고 맘이 들떠서 그랬는지, 아니면 요즘 신경 쓰고 있는 일로 머릿속이 복잡해서인지, 필자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연발했다. ‘아뿔싸! 이성의 뇌가 잘 작동되지 못하고 있구나...’ 헤어지고 미안했지만 ‘괜찮아~ 내 허물을 드러내는 연습을 한 거야. 그분들은 이해해주실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몸과 맘이 건강하려면, 예민한 사람의 경우 적당히 둔감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는 어느 의사의 강의가 생각난다. 일부러라도 창피한 일을 해보라고 권유하는데,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마음의 힘이 길러질 것이라고 한다. 실수와 허물을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같은 분들이라서, 어쩌면 필자의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을 수도 있다. 암튼 만나면 편하고 기분 좋다.
전라남도 목포에는 따스한 어머니 품 같은 ‘괜찮아 마을’이 있다. 힘들고 지친 젊은이들에게 “괜찮아~” 말해주며 함께 지내면서 길을 찾아보자고 한다. 바다와 산과 섬,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평화로운 마을을 이뤄가는 꿈을 꾸는 곳이다.
따로 또 같이 자유롭게 생활하며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때로는 목적 없이 비생산적인 일도 하며, 남과 다르다고 해서 손가락질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고민하고 토론하며 창업을 해 독립하기도 한단다. 참으로 용감하고 괜찮은 젊은이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눈에 보이는 상처에는 민감하고 솔직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에는 그렇지 못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다룬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도 생각난다. 2014년 SBS에서 방영된 마음성형 메디컬 스페셜드라마인데, 조카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지해수(공효진)는 정신과 의사이지만, 아픈 아버지를 두고 외도한 어머니로 인한 상처때문에 불안장애와 관계기피증이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는 열린 사고의 작가 장재열(조인성)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지 못한다. 그 또한 아버지의 학대와 폭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내며 아버지의 살인사건과 관련되는 놀라운 과거가 있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허구의 인물 한강우(도경수)와 살아가고, 특정 색이나 인테리어를 고집하는 강박과 편집증을 보인다.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뚜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수광(이광수)은 해수에게 한없는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괴팍하고 똘끼충만한 정신과 의사 조동민(성동일)은 외친다. “그래 나, 마음 아픈 사람 고치는 의사가 상담 좀 받았다. 어쩔래? 야 니들 외과, 암 고친다고 암 안 걸려? 야 내과, 니들 감기 고친다고 감기 안 걸려?”
이들은 가족처럼 한 집에 살면서 저마다 상처와 아픔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부분을 서로 보듬어가며 힐링해 나간다. 정신과 의사도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에 불과함을, 그리고 사람은 사람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랑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볼 때,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필자에게도 한 대문을 쓰는 빌라의 8세대가 새로운 가족처럼 느껴진다. 빌라살이는 아파트살이와 달리 다 함께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음식도 나누고 정도 나누기에 딱이다. 오빠 같은 남동생, 복덩이 막둥이도 있고,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는 동생도 있다. 큰 언니의 마음으로 잘 보듬고 허물을 다독여가며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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