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는 “비님이 오시네~!” 하며 자연사물을 존칭하여 표현하는 분을 보면 어색했다. 그런데 웬만큼 살아 보니 그렇게 말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산전수전공중전까지 치르고 난 후라 작은 것 하나까지 그저 감사의 마음이다.
꿉꿉한 날들이 계속되고 옷가지들은 눅눅하다. 맑고 쾌청한 날씨가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한줌 햇볕조차 고마운 분 그리운 분으로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이어지면 또다시 빗줄기를 그리워하게 되겠지. 인생은 돌고 돈다.
‘고마운 분’에 대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엄마 노인연금 수령과 관련하여 둘째 언니와 통화하다가 형부 연락처를 받게 되었는데, ‘OOO 고마운분’이라고 저장된 게 아닌가. 그걸 본 순간 필자는 얼음이 되었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나중에 언니와 오랫동안 통화하며 남편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는 ‘배우자에 대해 비틀어 자랑하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내의 독특한 요리 솜씨 덕분에 다이어트가 저절로 된답니다~”와 같은 식이다. 그걸 듣던 필자는 “말하기 좋아하는 저의 입을 다물게 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답니다~” 하고 혼잣말을 하며 웃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글쓰기 좋아하는 필자의 글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필배씨(필자의 배우자)에 대해 소개를 하고 싶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때면 한 쪽이 정확히 반대로 놓이게 하는 전위예술가이자, 무엇을 하고 나면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 놓는 충실한 보고자다. 구멍 난 양말이나 짝짝이 양말을 자신 있게 신고 다니는 패션리더이자,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집에서 출근할 때면 천상에서 지상에 내려가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하는 풍류시인이다. 커피숍에서 책을 보는 문화의 원조가 자기라고 자부하기도 한다. 필배씨에 대해 자랑하는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러니 오래 살고볼 일이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면에 매력을 느끼고 비슷한 면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매력적인 사람과 결혼을 하고 편안한 사람과 친구를 맺는다. 물론 매력적이면서도 편안하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만남이겠지만 매우 드문 조합일 것이다. 그런데 매력적인 사람이 편안한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떨까? 소위 말하는 ‘참을 인(忍)’자를 몇 번이나 새겨야 할까?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된다는 ‘종이학’ 노래 가사처럼 천 번쯤은 참아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동안 거울뉴런을 통해 DNA가 상호 교환되면 신기하게도 서로의 모습이 바뀌어 있음을 보게 된다. 도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내는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켜간다. 좋든 싫든 부부는 닮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은 금방이라도 닮겠지.
중국에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싼샤댐이 집중호우로 인해 홍수위험에 놓였다고 한다. 계속 참기만 하다 보면 우리 마음이나 감정도 홍수가 날 수 있다. 건강댐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주 감정의 수문을 열어 방류해주어야 한다. 믿을만하고 배경이 되어주는 친근한 사람에게 감정을 털어놓자. 그러면 마음에 햇볕이 들어 뽀송뽀송하게 될 것이다. 
7말8초 황금휴가 시즌이지만 코로나19도 그렇고 한가하게 지내길 원한다면 라디오로 세상과 소통하는 라캉스를 추천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찡한 인생 사연들과 아름다운 음악이 행복호르몬을 선물로 보내 준다. 필자는 KBS kong에서 7년째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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