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학창시절에 <에밀>이라는 교육서적으로 만났던 ‘장 자크 루소’에 대해 그저  <사회계약론> 같은 어려운 내용의 책을 많이 쓰고 계몽주의 활동을 했던 위대한 인물로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일컬어질 만큼 그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정리하기도 하고, 직접 작사·작곡한 오페라를 공연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저서는 자연 상태의 회복을 강조하며 당대의 전통과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내용이어서 기득권자들의 탄압을 받았고, 그래서 도망자의 삶을 살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탄생과 성장과정이다.
출생 후 며칠 만에 엄마가 죽게 되고 아버지마저 책임감 있게 돌봐주지 않아 고아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신세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할 만한 환경이지 않은가 싶다. 하지만 이십대에 만난 바랑 부인을 통해 그는 음악에 몰두하고 다방면의 독서를 함으로써 왕성한 지적 욕구를 채우며 다행히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후 계몽주의자들과 교유하고 유럽을 여행하며 사상을 키워간다.
여러 귀족 부인들과 사귐을 갖기도 했지만 23살 어린 하녀와 오랜 동거 끝에 결혼을 했다.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충격적이게도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고 한다. 혁신적인 교육 사상가로 알려진 그가 자녀들에게 그리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불안정한 사회적 환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위대한 사상의 실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그의 삶을 바라보며 만남의 소중함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내는 강인한 내면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결정적인 단점이나 약점이 있을 수 있으며 받은 사랑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올랐다. 다정다감하고 유쾌한 아버지인 것을 필자는 알아보지 못했다. 시골에서 자수성가하여 팔남매를 키워 도시로 내보내며 교육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조선시대 실학자와 같이, 마을지도자로서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모습이었다는 것도 잘 몰랐다. 그림자가 온통 빛을 가려버렸다. 때때로 보인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 어린 시절에 받았던 그 상처 때문에...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으니 내가 본 굽어진 나무가 전체인 줄 안다. 어린 시절이 중요한 까닭이다. 평생 씨름하는 문제가 있을 경우, 지하실과 같은 무의식의 내면을 깊이 내려가면 성장이 멈춰버린 내면아이를 만나게 된다. 필자는 두려움에 떨며 꽁꽁 얼어 있는 내면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젠 괜찮아~” 하고 계속 토닥거려 주었다. 눈물이 나오면 엘사의 마법에서 풀렸다는 신호다.
며칠 전 올해의 첫눈을 제대로 보았다. 하늘이 펼친 아름다운 나뭇가지 설경을 보며 우리의 모든 허물을 감싸주고 하얗게 변화시켜주는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이 떠올랐다. 스쳐지나가듯 빌었던 소원이 현실로 이뤄져 참 감사했다. 올해의 남은 기간을 감사로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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