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뭇가지들이 겨울잠을 끝냈나보다. 가지 끝이 살짝 실눈을 뜨고 바깥세상을 살피고 있다. 이제 손발을 좀 내밀고 나가 볼까나?
낙엽수들은 이렇게 몸풀기를 하고 있지만 상록수는 사시사철 늠름한 모습이다. 상록수의 푸르름이 유난히 돋보인 것은 겨울철에 주변의 낙엽수들이 자신을 낮추었기에 그 희소성으로 인한 것이었으리라.
예로부터 상록수는 장수와 정의, 변치 않는 절개와 충성심을 의미하기에 많은 곳에서 환영을 받아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나무이다. 생활용품에 애용되기도 하고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왕족시대에는 권력자들의 전유물이 되기도 했다.
필자는 ‘소나무’와 ‘선구자’ 노래를 애창하며 상록수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왔다. 하지만 지나온 나날들을 돌아보니 우여곡절 많은 낙엽수의 삶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인생의 계절마다 주어진 인연 따라 생의 바다를 넘실넘실 잘도 넘어왔다.
상록수를 꿈꾸었기에 한결같은 사람을 짝으로 주셨나 보다. 하지만 그 한결같음은 거꾸로 벽이 되어 돌아왔다. 필자는 그 벽에 창조적인 그림 대신 어두움의 화신처럼 불을 뿜어댔다. 하지만 벽은 녹지 않았고 필자는 녹초가 되었다. 그제야 시간의 마법사는 든든한 벽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허락해 주었다.
상대방의 DNA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먼 길 돌고 돌아 힘은 들었지만, 이제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보며 웃는 날들이 늘어감에 감사하다. DNA 교류가 되지 않으면 평행선 부부로 남아 계속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는 별명이 황소라고 불릴 만큼 뚝심이 강하고 웬만한 일에 휘둘리지 않는 언니가 있다. 젊은 시절 그토록 의연하게 어려움을 넘어간다 했더니 점차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그런데 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느긋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 아닌가? 만성통증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저렇게 아픔을 참아도 되는 것일까 염려가 된다. 강점이 단점으로 전환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환자가 스스로 절반은 의사가 되어야 나을 수 있다는데...
우직한 상록수 같은 사람은 작은 문제나 고통 앞에 감각이 둔감한 것 같다. 그래서 민감성의 낙엽수 같은 사람이 곁에서 괴로움에 허우적거려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발열점이 서로 다른 물질들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까닭이요, 상록수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다. 양가감정이란 애증이나 시원섭섭한 마음처럼 서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한편, 코로나19가 극복되어도 지속될 10가지 트렌드는 ‘가정간편식, 홈트레이닝, 마스크쓰기, 위생습관, 굿바이 저녁회식, 재택근무, 작은 결혼식, 실용주의 패션과 메이크업, 캠핑, 혼자 놀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핵심은 집을 중심으로 하여 그 기능이 다양해진 라이프스타일이 된다는 것이다.
설 명절이 막 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나지 못하니 편안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가족에 대해서도 양가감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은 섞이기 어렵지만, 친수성과 친유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지질 같은 물질이 함께 있으면 가능해진다. 집에서 누가 평화의 사신으로서 인지질 역할을 해주고 있는지 생각해보며 고마움을 표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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