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상도동, 구민참여감사관)

내 나이 70을 넘고 나니 ‘누구는 병났다’, ‘수술했다’, ‘저 세상으로 갔다’며 주변 지인들의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육십갑자’ 한 바퀴 돌고 10여 년을 덤으로 살았으면 됐지 이제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같이 살기 좋은 세상에 평균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다소 아쉬움은 남는다. 더욱이 어려운 이웃에 물심양면 헌신적으로 사랑을 베풀며 아름다운 삶의 모범을 보여 온 분이 먼저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슬프다.
‘죽음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데 우리는 왜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잘 죽을 것인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 천상으로 갈까, 지옥으로 갈까?’ 등등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죽음의 문제에 관한 한 정답이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음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관계없이 차별을 두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우리는 조용히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젊음은 잠시,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늙고 병들고 죽음이 우리 눈앞에 기다린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별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에도 우리는 어리석게도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남의 일처럼 방심하고 있다. 죽음을 좋아할 사람 어디 있겠는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오래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어디 인간만 그럴까. 아니다.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중생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만사 상대적이 아닌 것이 없다. 이것 있으면 저것 있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사랑이 있으므로 미움이 생긴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삶 또한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죽음은 산 너머 저 멀리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그저 인생 행로의 과정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99세까지 88하게 살고 2일 동안 앓다가 3일 째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며 후회하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아내, 자식, 친인척, 둘도 없는 친구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괜찮다, 사랑한다’고 마음을 표현해야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는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섭리를 깨닫고 주어진 시간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면 여생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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