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국가원로회의 원로위원)

‘대장 부리바’는 코사크 족이 폴란드제국의 침입에 맞서서 용감하게 항거하여 조국을 지켜내는 시대극으로 뛰어난 영상미와 잘 짜여진 내용을 갖춘 보기 드문 고전 명작입니다. 폴란드 제국의 압박에 항거하여 굽힐 줄 모르는 투지로 싸워서 이긴 용맹한 기마전사집단 코사크족의 대서사시 ‘대장 부리바’는 러시아의 대문호 ‘고골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지요.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가 초미(焦眉)의 관심사입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지만 인구 245만 명 중 러시아인이 58.5%를 차지하고 있죠. 도시 모습도 러시아풍 일색이랍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의 작은 러시아’로 불릴 수밖에 없죠.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발판으로 유럽, 미국과 손잡으려는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 다. 크림자치공화국 청사와 의회는 이미 러시아계 무장 세력에게 장악되었고 국민투표에 의해 러시아와의 합병을 압도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즉각 러시아 상하의회는 물론 푸틴 대통령의 합병서명까지 마쳤지요.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한 러시아에게 이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림반도는 흑해에 자리잡아 일년 내내 기후가 온화한 곳입니다. 게다가 흑해 서남쪽의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면 지중해로 나갈 수 있고,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중동 아라비아 해까지 진출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할 수밖에요.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 우크라이나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1995년에 소련에서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300여 년간 잊어버린 우크라이나어를 공식어로 하였으나 아직도 러시아어가 쉽게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구는 우리와 비슷한 4천7백만 명, 영토는 한반도의 3배, 그러나 80%가 평야이니 산이 70% 이상인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입니다. 그 우크라이나에 3가지 부러운 것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끝없는 평야와 옥토입니다. 황갈색의 흙도 한번만 뒤집으면 새까만 흑토가 나올 정도의 비옥한 땅입니다. 둘째는 바다를 이룬 숲입니다. 특히 키에프 주변은 20여 미터 높이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우리나라라면 한 그루에 2~3천만 원 할 소나무라네요. 셋째는 깨물고 싶도록 하얀 피부의 예쁜 얼굴을 가진 여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험난합니다. 외세의 침공에 끝없이 시달려온 우리나라 역사는 저리 가라 할 만큼 다난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우크라이나입니다.
먼저 13세기의 몽골군과의 전투를 살펴봅니다. 세계 역사를 바꾼 징키스칸의 몽골군이 1238년 모스코바를 함락시키고, 2년 뒤인 1240년 ‘바투 칸(Batu Khan)’이 키에프를 침공합니다. 10주간의 키에프 시민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키에프성을 함락시킵니다. 징기스칸의 전투 철학은 싸우지 않고 순순히 항복하면 기득권을 인정하고 점령통치를 상당부분 위임하는 것입니다. 사마르칸트성의 경우처럼 저항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씨를 말리는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성이 함락된 후, 엄청난 살육과 약탈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 후 200년간 몽골의 가혹한 지배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슬라브족의 정치적 중심지는 지금의 모스코바로 이동하게 됩니다. 14세기 들어서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당시의 강국인 인접국 리투아니아에게, 16세기에는 폴란드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맙니다. 16세기에 접어들어 러시아황제의 압제에 못 이겨 도망오는 난민들이 바로 코사크족입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정착하여 폴란드에 항거합니다.
‘대장 부리바’도 당시의 역사이죠. 그 후 코사크 족은 우크라이나 민족성을 유지 보전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1654년부터는 러시아 황제 알렉세이에게 합병됩니다. 그 후,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해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1990년 7월 16일 36년이 아니라 장장 336년간의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었죠.
이유야 어떻든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영토인 크림반도를 아야 소리 한 번 질러 보지도 못하고 강대국인 러시아에게 먹힌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맨날 정쟁이나 벌리고 있으면 언제 우리도 강대국인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에 잡혀 먹힐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상이긴 하지만 그 문제점을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첫째, 중국의 태도입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 따위의 허접한 논리로 북한을 넘볼 경우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엄청난 군사력을 백두산 쪽에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가 문제입니다. 크림사태가 바로 중국의 대북(對北) 야욕을 차단 못할 국제적인 선례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둘째, 본래 러시아 영토에다 러시아인이 다수인 크림반도의 운명에 러시아인이 무관심할 수 없어 적극 개입했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곧바로 만주에도 적용된다는 점이죠. 즉, 만주는 본래 대한민국 영토였습니다. 또 한국인이 다수인 만주의 운명에 동족인 한국인이 관심을 가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현재로서는 꿈같은 얘기이지만요.
셋째, 자라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순진하게 핵(核)을 뺏긴 우크라이나가 힘 한 번 못 쓰고 크림반도를 넘겨 준 것을 보고 북한이 핵을 고집할 것이 눈에 뻔하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요? 역사는 거울이라 했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래서 일찍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죠. 어쨌든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국민 모두가 일심합력하고 대장 부리바나 이순신 장군 같은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방비를 탄탄하게 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혀 남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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