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동작지회장
조 승 현

나는 집에서 매일 버스를 타고 상도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해야 한다. 늦은 오후였는지 아무튼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겠다고 흰지팡이를 쥐고 땅바닥을 톡톡 두들기며 상도역으로 걷는데 평소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갑자기 이상한 것이 걸렸다. 몸의 중심을 잃고 그대로 길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한 젊은 장애인이 상도역 내려가는 계단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휠체어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반바지 차림이었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무릎과 정강이를 모두 드러내놓고 윗몸을 약간 흔들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물론 이 상황은 나를 인도하는 활동보조인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알게 된 것이었다. 자세히 볼 틈이 없었지만 잠깐 사이에 받은 느낌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태도, 지푸라기조차 잡을 수 없는 마지막 상태, 눈물이니 감정이니 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어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 혹은 행복과는 정반대라 할 만한 그런 느낌이었다. 잠시 스쳐 지나간 그날의 전경이 지금껏 기억에 떠올려지곤 한다.
그곳에는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엘리베이터는 건너편에 있는데 혼자서는 길을 건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장애인과 함께 온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저쪽으로 갔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더욱더 그 기억이 절망과 결부되어 마음 한구석을 후벼파곤 했다. 그 휠체어에 걸려 넘어지면서 다친 무릎이 아파서 치미는 울분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인간에게 가해지는 험한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때 그 전경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사회적 고통과 비참의 밑그림과 같은 상징으로 남아 있다.
난 2004년 시각장애인이 되면서 인권 운동을 만나고 인권 공부를 하면서 인권의 기본적 접근방식인 최저 기준 원칙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적어도 이런 정도는 충족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하향 한계선이 최저 기준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최대한의 바람직한 상태를 지향하는 가치 실천 체계를 인권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인권에 개념이 확실치 않은 사람은 인권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최대치를 요구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인권은 도덕적, 사회적 최대치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특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인간에게 이 정도도 안 해주느냐, 최소한의 기준조차 지켜주지 않으면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겠느냐고 절규하는 주장이 인권이다. 인권에서 말하는 최저 기준은 이처럼 최소한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강조한다면, 인권에서 말하는 최저 기준은 최저 상태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 발전 정도에 따라 최저 기준 자체가 상향 조정되어 온 것이 인권의 역사다. 그러므로 과거의 최저 임금 기준이 오늘의 여건에 비추어 최저 임금 기준이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서 미래 최저 기준도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어렵긴 하겠지만 현재 사회 발전 수준을 고려해서 최저 임금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기준이어야 하겠다.
지금 이렇게 인권의 최저 기준을 말하는 것은 인권이 이처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것임에도 왜 그렇게 심하게 외면당해야 하고, 왜 그토록 실천이 어려우냐다. 어마어마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왜 이 정도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받아들여지기가 그토록 어려운가.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 계단 앞에서 처연하게 절망에 빠져 있는 한 장애인의 소리 없는 절규, 1년에 상위 10대 기업 감세가 7조에서 10조 원이나 되는 나라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로 자살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 멀쩡한 병사가 기합과 구타로 죽어 나가는 그런 병영을 바로잡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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