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품었던 연기자의 꿈, 열정으로 되살려
50년 만에 돌아온 무대에서 최우수연기상 영예

 
2019년 가을 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린 제5회 서울시민연극제에서 동작구 연극인들이 좋은 성과를 올렸다는 낭보가 들려온 바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동작지회(회장 이윤선) 산하 동작연극협회(회장 김은경)의 시민극단 ‘동행’이 출품한 ‘아비’가 4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것.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애달픈 가족 사랑을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 ‘아비’는 최우수연기상, 금상, 작품지도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동작신문 제677호 게재)
김은경 회장을 비롯해 모든 단원들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였다. 그 중심에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열연으로 최우수연기상의 주인공이 된 송기천 배우가 있었다.
동작신문 취재진이 흑석동의 한 카페에서 송기천 선생을 만났다. 2020년의 문을 여는 첫 인터뷰였다.

□ 연기자의 꿈 접고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 
송기천 선생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1970년대 초반,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청년이 연기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와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연기자의 꿈을 내려놓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렇게 접어둔 꿈은 50여 년 세월 가슴 속에만 묻어두게 되었다.
“연기를 포기하고 나서 10년 동안은 연극도 영화도 드라마도 아예 쳐다보질 않았어요.”
갈 수 없었던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진했지만,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한 직장에서 28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 후에도 개인사업을 꾸리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치열했던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뒤로 하고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계기는 손주들의 탄생이었다. 송기천 선생은 동작무용협회 고선아 회장(서울시무형문화재 45호 한량무 보유자)의 부군이다. 어머니의 춤을 보고 자란 슬하의 두 딸도 무용인의 길을 걷고 있다. 딸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했다.
송기천 선생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두 팔을 걷었다. 아내와 두 딸이 전통문화예술 계승이라는 소중한 사명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지극정성으로 다섯 아이를 돌봤다. 육아 초보인 할아버지로서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손주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어여뻤다.

□ 오랜 세월 품어온 꿈 격려해 준 아내
평생을 가정에 헌신한 송기천 선생에게 ‘연극을 다시 해 볼 것’을 권유한 것은 아내였다. ‘오랜 세월 품어온 꿈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아내의 진심 어린 격려에 가슴이 뛰었다. 
“내가 연극을 다시 한다니…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어요. 50년이라는 공백을 제대로 메꿀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죠.”
2019년 봄, 김은경 동작연극협회 회장으로부터 시민연극제 준비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은 후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주인공 역을 맡아 연극제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며칠에 걸친 고민의 결론은 ‘후회 없이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무대로 돌아왔다.
김은경 회장은 연기 전공자로서의 기본기와 인생 선배로서의 연륜을 존중하며 배우 송기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젊은 동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습을 거듭할수록 학창 시절에 배운 것들이 떠올랐다. 무대가 점점 편안해졌고 뜨거운 열정이 되살아났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신나게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올랐던 무대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상이었다. 시상식 내내 불리지 않았던 송기천 선생의 이름이 막바지에 호명되던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어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 좋아하는 일과 함께하는 삶에 활력 넘쳐
송기천 선생은 50년 만에 돌아온 무대에서 거둔 쾌거에 “다시 연극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아내, 나를 믿고 배역을 맡겨준 김은경 회장님, 함께 땀 흘렸던 단원들, 연극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준 이윤선 회장님 등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고 공을 돌렸다.
동작연극협회는 올해에도 수준 높은 작품으로 연극제에 도전하고, 동작구민을 위한 무대를 마련할 예정이다. 새 작품을 기다리는 송기천 선생의 눈빛에 기대감과 즐거움이 엿보였다.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기분좋은 에너지가 전달되었다.
“다시 연극을 시작하면서 제 삶에 활력이 넘치게 되었어요. 여러분들도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셨으면 합니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즐긴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좋은 일들이 가득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송기천 선생이 동작의 이웃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동작신문 취재진은 송기천 선생과 동작구 문화예술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장시간 이어진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에 불어오는 바람이 봄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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