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우리의 ‘봄’을 떠나보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같이 단장한 봄꽃들의 찬연한 축제를 누려보지 못한 아쉬움에 이름만이라도 불러 보고 싶다. 제주의 유채꽃들아, 태안과 에버랜드의 튤립들아, 구례의 산수유들아, 광양의 매화들아, 군포의 철쭉들아, 중랑천의 장미들아... 지척에 있던 여의도 벚꽃들조차도 그냥 보냈지... 안녕...
지나고 나니 좀 알 것 같다. 보이는 것 같다. 코로나19. 그리고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지... 올해 초에 성급한 낙관론은 위험하다고 말하던 이들이 생각난다. 아직 두 계절이 더 남아 있다. 최소한 1년은 지나봐야 제대로 알겠지.
극적으로 변화된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럴 때 ‘시간’이 답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는 어떻게 갑작스런 시각장애를 그렇게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12살에 축구공에 맞아 실명했을 때 “딱 한 시간만 울자!” 했고 적응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참으로 놀라운 적응력을 선사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목과 달리 홀로코스트 실화영화이다. 유머러스하고 쾌활한 주인공은 무자비한 나치 수용소 생활을 단체게임이라 말하며 1,000점을 얻으면 진짜 탱크를 받을 수 있다고 어린 아들을 달래며 숨긴다.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기쁨에 들떠 아내를 찾다가 독일군에 발각되어 총부리가 겨누어진 마지막 죽음 앞에서조차 숨어 지켜보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장난치듯 우스꽝스럽게 걸어가는 장면은 웃픈의 극치를 보여준다.
시각장애나 죽음이라는 혹독한 운명 앞에서도 ‘가족’이 있기에 넘어설 힘이 있음을 느낀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동작구 보건소에서 내건 현수막에 “내 마음의 소독제 가족, 늘 고마워요!”라는 문구가 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가족이 어디 순기능만 하겠는가.
얼마 전 ‘부부의 세계’라는 JTBC 드라마가 30%라는 비지상파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보이며 막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해석하는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랑의 인연으로 맺어진 부부지만 배신 앞에서 처절하게 복수하며 남 아닌 남이 되어가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린 심리극이다.
부부란, 가족이란, 개개인의 무의식이 여과 없이 등장하는 무대가 아닌가 싶다. 성장과정에서의 상처와 고통들이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좀비처럼 나타나 서로를 공격한다. 이 좀비의 실체를 알지 못하니 오해를 낳고, 오해는 싸움을 증폭시킨다. 어느 심리상담사는 부부싸움을 핵전쟁으로 비유하며, 그 사이에서 자녀는 아무런 방호복 없이 고스란히 상해를 입게 마련이라고 한다.
인생에서 정말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아픔보다 자녀의 비틀린 삶과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리라.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자녀 문제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시시한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에겐 비틀림조차 더 큰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세계적 영장인류학자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40년 넘게 침팬지들과 가족처럼 살았다. 동물행동을 연구하여 획기적인 발견을 함으로써 침팬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구달 박사는 코로나19에 대해 “자연과 동물을 경시하고 학대한 결과”라고 일침을 가한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를 당부한다.
문제는 ‘지나침’이다. 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의사였으며 몸맘삶훈련원장인 유태우박사는 몸의 질병도 대부분 지나침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지나친 습관을 바로잡는 훈련을 통해 대부분의 질병들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지구 가라사대 “지나친 인간 중심의, 지나친 무분별한 개발을, 지나친 경쟁을, 지나친 열심을 바로잡아 조화와 균형의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소소한 일상을 이상으로 꿈꾸게 되는 날들이 더욱 길어지리니.
가뭄에 단비같이 기쁜 소식 하나.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NATURE』지에 한국특집기사가 실렸다. 국내 진단키트가 호평 받으며 주문이 쇄도하자 K-방역의 우수성과 함께 혁신 글로벌 리더로서의 한국을 조명한 것이다. 1993년 대전 엑스포 이후 27년만의 일이다.
6월이다. 유월엔 유순한 마음으로, 유머도 해가면서, 유쾌하게 지내보자. 자신의 단점과 고통을 유머의 재료로 삼는 마음 부자가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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