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국제상을 휩쓸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핫해진 영화 [미나리]를 보기 위해, 예전에 마을활동을 함께 했었던 지인 두 명과 영화관에 갔었다.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가보는 것이기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영화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이민을 간 한국 가족들의 이야기인데, 머나먼 타국에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희망을 보여주었고,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는 ‘미나리’는 그 희망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매개체로서 영화의 주제를 이미지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는 우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나리둥절’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상을 많이 받았을까? 마음을 특별히 두드리는 게 뭐지? 깊은 공감이 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뭘 몰라서 그런 건가? 이민이라는 주제가 우리와 거리가 있어서일까? 그 많은 호평들로 인해 기대가 너무 높았나? 미나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음악은 또 뭐지? 머릿속에 각양각색 물음표들이 둥둥 떠다녔다.
우리는 도림천을 산책하면서 영화에 대해 솔직하게 나누며 혼란스런 감정을 다독였다. 그리고 함께 결론을 지었다.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독립영화이며 평범한 이민가족의 삶을 그린 작품이기에 잔잔하고 담백한 것은 당연하며, 그동안의 헐리우드 영화나 대중적인 영화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바라지는 않아야 한다고.
필자는 농장 건물이 불타는 장면을 보며 영화 [위대한 쇼맨]이 떠올랐다. 그 영화는 필자의 삶을 투영하게 되는 인생영화 중 하나이다. 근대적인 서커스 문화의 창시자인 바넘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영화로, 우리는 누구나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THIS IS ME!”라는 주제가는 언제 들어도 심장을 활어처럼 뛰게 한다.
오랫동안 피땀 흘려가며 혼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들을 한순간 화마가 집어삼켰을 때 얼마나 절망하게 될 것인가? 하지만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했을 때야말로 전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두 영화는 모두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분야든지 거대독점의 시대는 지나고 지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작은 점들이 모여 위대한 무엇을 창조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영화계에서도 작은 영웅들이 주인공이 되는 지금, 어쩌면 기존에 익숙해져 있는 특별한 맛을 무의식적으로 바랐기 때문에 영화 [미나리]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알렉산더 대왕이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디오게네스가 떠오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함이야 익히 알려져 있지만 금욕주의자 디오게네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필자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채움이, 디오게네스는 비움이 연상된다.
[미나리]는 마치 자연적인 생활철학을 실천한 디오게네스를 닮은 듯이 느껴진다. 가족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MSG를 넣지 않은 천연의 한식 요리 같다고나 할까? 요즘 시청률이 꽤나 높다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와는 정반대이다.
[미나리]에는 가족의 사랑, 삶의 지혜, 강인한 생명력, 주변을 정화시켜주는 힘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엄마가 차려준 소박한 밥상에 건강의 비결이 숨어있듯, 평범하고 보편적인 가정의 모습에 위대한 인류의 가치가 녹아져있다.
영화보기 바로 전날, 둘째언니와 먹은 미나리해물탕의 향긋한 내음이 아직도 코끝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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