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엔 벌써 봄이 왔다. 보통 4월 말경에야 피는 영산홍에 꽃이 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산홍은 진달래나 철쭉처럼 낙엽관목이 아니라 상록관목이라서 겨울에도 초록 잎이 지지 않아 싱그러움을 더해주어 좋았다. 1월 중순에 처음으로 분홍색 꽃망울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이 두근거리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후로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꽃을 살피러 가는 게 일이었다. 어린 시절 가을 아침마다 우리 집 밤나무 열매가 배추밭에 떨어진 것을 누가 주워갈까 싶어 부지런히 일어나 이리저리 알밤을 찾아
별로 춥지도 않고 눈도 거의 없었던 작년 겨울의 날씨와는 달리 올 겨울엔 벌써 세 번째 눈이 왔다. 아름다운 ‘겨울왕국’을 이루니 아이들은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골목길엔 귀여운 올라프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사가 전혀 없지만 감동적인 풍경과 음악의 애니영화 ‘스노우맨(Snow Man)’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며 황홀한 눈꽃 풍경을 바라보는 상상을 할 수도 있었다.물론 필자도 눈이 오면 치울 일이 걱정되고 넘어질까 염려가 앞선다. 언덕이 많은 이 지역으로 이사 왔을 때 겨울에 눈 오면 다닐 수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경사가
신축년 새해의 “응애” 하는 힘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집안에 아기가 탄생하면 신비로운 밝은 에너지가 감돌고 웃음꽃이 피어나듯, 우리에게도 그런 기운들이 차고 넘치길 바라본다.아기가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모습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평화를 느끼게 해준다. 단잠이라는 보약을 먹으며 아기는 자라가고, 기지개를 쭉쭉 켤 때마다 무럭무럭 성장하며 어느새 아이 안에 생각나무의 싹이 난다. 생각나무가 자라면 잎이 열리고 열매를 맺는다. 생각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그 열매는 천차만별이다. 생각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인격을, 인격은 운
오래전 학창시절에 이라는 교육서적으로 만났던 ‘장 자크 루소’에 대해 그저 같은 어려운 내용의 책을 많이 쓰고 계몽주의 활동을 했던 위대한 인물로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철학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일컬어질 만큼 그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정리하기도 하고, 직접 작사·작곡한 오페라를 공연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저서는 자연 상태의 회복을 강조하며 당대의 전통과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내용이어서 기득권자들의 탄압
바야흐로 나목의 계절이 왔다. 화려한 장식은 사라졌지만 나뭇가지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특별한 시기로 여겨진다. 저마다의 스타일로 매력을 발산하는 패셔니스타의 정지동작과 같다고나 할까? 가지 끝이 섬세할수록 가지 모양이 독특할수록 눈길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진다. 공원을 걷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나목을 ‘나의 나무’로 삼고 사진도 찍었다.‘나목’ 하면 박완서가 1970년에 발표한 소설이 떠오른다. 6.25전쟁 당시의 암담하고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쓴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자 데뷔작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화가 박수근에 대한 존
가을을 흠뻑 느끼며 한적한 보라매공원을 홀로 산책했다. 드넓고 푸른 하늘 아래 겨울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나무들이 겸손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자신을 비우니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가 빛을 발하는구나!그러다 문득 사람들로 북적이던 예전의 풍경이 떠오르며 동시에 ‘그랑자트섬의 오후’라는 그림이 오버랩되었다. 집도 사람이 있어야 윤기가 나고, 공원도 사람이 있어야 활기가 넘치는데... 그리운 이들에게 톡으로 공원사진을 보내며 감상을 나누니 마음이 흘러 시원해졌다.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이날치 그룹’ 소개 영상을 받았다. ‘범 내려온다’
남양주 천마산자락 아래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뵙지 못한지 8개월이 되었다. 중간에 잠시 비대면 면회가 허락되어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 상봉하듯 쪽만남이라도 가졌던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추석에도 역시 면회가 금지되어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자녀들이 영상을 제작하여 보내주면 추석 행사를 할 때 보여드린다는 것이었다. 아싸~ 얼른 팔남매 단톡에 사실을 알리고 영상을 1~2분으로 제작하여 주말까지 올려달라고 했다.다들 처음 해보는 터라 고민하며 누가 스타트를 할 것인지 기다리는 듯 했다. 링컨이란 별명의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밤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총총한지 계속 고개를 치켜들고 걸었다. 그중에 특히 큰 별 하나와 작은 별 하나가 나란히 따라오며 길동무를 해주었다. 덕분에 동방박사도 되었다가 망망대해에서 별의 안내를 받는 선장이 되기도 했다. 가다보니 마을활동을 했었던 빙수골에 도착했다. 마음이 고팠나보다.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떠올리며 나도 시인처럼 별 하나에 아름다운 이름들을 불러 본다. “별 하나에 꽃들과 / 별 하나에 도라지와 / 별 하나에 그리움과 / 별 하나에 웃음과 / 별 하나에 정과 / 별 하나에 빙수골, 빙수골.”
무더위보다 더한 찐장마가 지나가고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을! 가슴 설레게 하는 연인과 같은 가을이 드디어 왔다.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 속에 한가득 선물을 싣고.파란 가을 하늘을 상상하며 바람이 실어다 준 추억 하나 살포시 꺼내본다. 시골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가을운동회를 앞두고 단체무용인 부채춤을 연습하다가 휴식시간에 지친 몸으로 화단에 앉아 바라본 하늘. 어찌나 푸르던지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이후 그 순간은 평생 간직하는 마음의 첫 블루사진으로 남게 되었다.스카이 블루도 좋아하지만 코발트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것 중에는 사람 구경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자세나 표정을 보며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요즘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즐기는 편이다.마을버스를 이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아기나 어린 아이를 보면 내 자녀의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필자에게 마을버스는 사람 사는 맛을 물씬 느끼게 해주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으로 느껴진다.재작년쯤 마을버스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이웃이 있다. 한 번 만나 대화를 나누기는 했으나 이후 서로 연락을
젊었을 때는 “비님이 오시네~!” 하며 자연사물을 존칭하여 표현하는 분을 보면 어색했다. 그런데 웬만큼 살아 보니 그렇게 말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산전수전공중전까지 치르고 난 후라 작은 것 하나까지 그저 감사의 마음이다.꿉꿉한 날들이 계속되고 옷가지들은 눅눅하다. 맑고 쾌청한 날씨가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한줌 햇볕조차 고마운 분 그리운 분으로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이어지면 또다시 빗줄기를 그리워하게 되겠지. 인생은 돌고 돈다.‘고마운 분’에 대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엄마 노인연금 수령과 관련하여 둘째
지푸라기가 뭉쳐져 있는 것처럼 죽은 듯이 있다가 물을 만나면 몇 초 만에 활짝 피어나는 식물이 있다.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서식하는 부활초는 태양의 공격과 열 손상을 막기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몇십년 만에도 물방울에 되살아나는 신비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분자세포 공학교수인 쥘 페른 박사는 지난 2015년에 사막화와 전쟁 등으로 척박해진 땅에서도 자랄 수 있는 부활초에 대한 연구를 통해 농업생명공학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식량난을 해결하고 젊은 피부를 갖기 원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항산화 제
“젊었을 때 자녀들 공부시키느라 어려웠잖아요. 지금 그래도 보람 있구나, 우리가 이 만큼 살게 되니까 복지혜택 받는구나 하고 흐뭇한 마음 있어요”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어르신의 말씀이다. 과거 노후 준비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평생을 자식과 부모 봉양으로 일만 하며 ‘나’를 위해 살지 못한 어르신에게, 기초연금은 이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 어떤 통계 수치보다도 기초연금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해마다 국민연금 연구원에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여 ‘기초연금의 사회경제적
속절없이 우리의 ‘봄’을 떠나보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같이 단장한 봄꽃들의 찬연한 축제를 누려보지 못한 아쉬움에 이름만이라도 불러 보고 싶다. 제주의 유채꽃들아, 태안과 에버랜드의 튤립들아, 구례의 산수유들아, 광양의 매화들아, 군포의 철쭉들아, 중랑천의 장미들아... 지척에 있던 여의도 벚꽃들조차도 그냥 보냈지... 안녕...지나고 나니 좀 알 것 같다. 보이는 것 같다. 코로나19. 그리고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지... 올해 초에 성급한 낙관론은 위험하다고 말하던 이들이 생각난다. 아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으로 다시 비상이다. 전국적으로 3만 5천명이 검사를 받았고 확진자가 130여 명이다. 무증상의 ‘조용한 전파’가 2차, 3차 지역감염을 일으키고 있다.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유연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되어 활력을 되찾나 싶더니 염려가 현실로 나타난다. 억눌린 에너지는 피로감을 느끼게 하여 성급히 분출구를 찾는 위험에 노출시킨다.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코로나19 가짜 정보와 사기도 극성이다. 돈을 소독하려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다 많은 돈을 불태우기도 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을 빙자한 보이스피싱도
코로나19와의 불편한 동거가 장기화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시작된 외로움이지만, 이젠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처럼 느껴진다.필자가 말하고픈 ‘홀로움’은 이렇다. 고독이 책을 부르고,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난다. 다른 이의 생각과 지식, 관점을 살펴보며 기존의 방식에 의문을 던져본다. 사유하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홀로 있는 외로움이 점차 즐거움으로 변해간다.최근 『환자 혁명』이라는 책을 읽으니 그동안 답답했던 의료현장에 대한 생각의 지평이 열린다. 예방 중심이 아니라 증상 치료에만 매달리는 현대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김 용 익 이사장코로나19의 효과적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의 극찬이 계속되고 있다. 그중 의료진의 노력과 더불어 비용 걱정 없이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지원한 건강보험의 존재를 가장 최우선으로 꼽는다.그럼에도 지난 3월 정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대상자 선정기준으로 건강보험료 부과금액 활용을 발표하자 일부 제외되는 국민이 보험료 산정에 1~2년 전 자료 사용 등 경제적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그러나 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를 살펴보면 직장가입자는 직장에서 받는 보수를 근거로 매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30년 전 이맘 때 감기에 걸리면 아이들은 뜨끈한 구들장에 누워 열을 빼고, 어른은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벌컥벌컥 들이켰다. 모두에게 병원이란 문턱은 높았다. 건강보험을 도입한지 12년만인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하여 금년은 전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연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병원 문턱은 그렇게 점차 낮아져왔다.2017년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어린이 병동을 찾아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지 만 2년이 넘었다. 그동안, 건강보험 적용의 범위는 크게 늘었다. 선
작년 3월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의 실현’을 정부혁신의 비전으로 삼고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 중심의 정부, 참여와 협력, 신뢰받는 정부라는 3대전략과 핵심과제를 선정하여 정부혁신종합추진계획을 수립・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3년차에 들어서면서 이에 걸맞는 추진방향과 과제를 반영한 새로운 2019년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기존의 비전과 목표, 3대 전략은 그대로 유지하고 계속과제는 보완・발전시켜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2019년도에는 새로운 정책여건에 따른 6대 역점 추진분야를 발굴하